차기정부, 복지재원 위한 '직접 증세' 지양할 듯

세율 높이는 '직접증세'보다 비과세·감면 정비 등 '간접증세'

차기 정부 초반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세율을 올리는 방식의 직접적인 증세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대신 기존 비과세, 감면제도의 일몰을 예정대로 종료하고, 명목세율보다도 최저한세율 등 실질세율을 높이는 간접증세 방식을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세정당국이 수집할 수 있는 과세정보 범위를 한층 넓히는 방식을 통해 세원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될 전망이다.

당초 박근혜 당선인이 제시한 공약대로 세출조정과 간접증세 방식으로 재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8일 기획재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오는 11일 이후 예정된, 인수위 경제1분과 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세입확충을 위한 별도의 증세계획은 따로 보고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위의 이 같은 행보는 사실상 차기 정부 조세정책에 소득, 법인세 등 직접세 명목세율 인상 방안이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박 당선인의 조세정책에 대한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는 이미 대선 전부터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달리 직접적인 증세는 가급적 마지막 방안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특히 법인세의 경우 "경기도 좋지 못한 상황에서 기업 경쟁력이 해가 될 수 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는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라는 조세정책 기조와도 맥이 닿는 부분이다.

대선 전후로 정치권은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논의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소득·법인세 직접 증세를 주장해온 야권과, 세출조정 및 각종 비과세제도 정비가 우선이라는 여권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여야는 팽팽히 맞선 증세논의를 대선 이후로 미루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증세논의 자체를 선거 결과에 따라 결정짓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세율인상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여권의 승리로 귀결됐다.

이에 향후 조세정책도 박 당선인의 의중대로 간접증세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이번 인수위에 세법개정을 담당하는 공무원 대신 세정현장에서 뛰고 있는 국세청 인원을 파견받은 부분도, 박 당선인의 '숨은 세원' 발굴이라는 정책기조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인수위에서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세출개혁안과 동시에 지하경제 양성화 등 숨은 세원 발굴사업에 정책의 중심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박 당선인의 세출구조 개혁의지는 인수위에서 처음으로 주재한 전체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부처 간 칸막이와 의사소통 문제로 세금이 낭비되는 경험을 했다"고 지적했고, 향후 정부 업무보고 내용에 예산절감 추진계획을 반드시 포함시킬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향후 경제정책 큰 줄기를 잡을 경제1분과(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관세청 등 담당) 간사로 예산분야 전문가인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을 낙점한 것으로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박 당선인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는 여권은 이미 측면지원을 시작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국세청의 FIU(금융정보분석원) 정보접근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대표발의한 상황이다.

이 원내대표는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는 바로 지하경제의 양성화"라며 강력한 법안통과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다만 넘어야 될 산은 여전히 남아있다. 인수위 과정에서 증세방안을 따로 논의하지 않더라도 향후 국정운영 과정에서 언제든지 증세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야권은 별도의 증세 없이 연간 20~30조원에 달하는 재원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기획재정위원회 내 조세개혁특위를 설치해서 여당과 고소득층, 대기업에 대한 추가증세 논의를 할 것을 주장해 여권과 합의에 이른 상황이다.

박 당선인이 복지 정책 공약이 상당히 광범위하고, 정책 시행과정에서 추가로 소요될 재원, 비과세 감면 정비정책의 한계성 등을 고려할 때, 향후 언제든지 '공약(空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증세 논의가 재현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박 당선인이 후보자 시절, 증세 논의를 하기 위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만들자며 '증세'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이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당선인이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제시한 추가 재원확보 규모는 5년간 135조원. 연간 27조원 규모다. 이는 비록 야권 대선후보의 세수확충 규모보다는 적은 편이지만, 박 당선인이 추구하는 간접증세 방식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경기침체 장기화로 정부가 당초 예상한 세수확보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에서 박 당선인이 제시한 간접증세 방법론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추가재원 확보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인수위의 향후 활동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