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에 대한 의구심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명박 정부 초기 부적절한 장관 후보자들의 '줄낙마'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재 안팎에서는 김 지명자에게 제기된 의혹들이 서류 검증만 제대로 하더라도 쉽게 걸러낼 수 있었던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자녀의 병역, 증여세 납부 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김 지명자의 자녀들이 친할머니(김 지명자의 모친)로부터 부동산을 증여 받을 당시 각각 6세와 8세였을 뿐더러 이에 대한 재산세와 증여세를 납부했는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 지명자 본인에게 제기된 부동산 투기 의혹 문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초반에는 서초동 땅과 건물(공시가격 46억원)에 대한 의혹만 제기되더니 급기야는 수 십억원대의 용산 서빙고동의 신동아 아파트와 종로구 무악동 현대아파트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인천 땅을 자녀에게 증여하며 신고가를 낮춘 의혹도 제기됐다.
게다가 가장 휘발성이 높은 자녀의 '병역면제' 의혹도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김 지명자가 의혹과 관련된 서류를 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후부터 준비하고 있다는 점. 인사청문회는 청문 대상에 대한 재산형성 과정, 학력, 병역, 세금납부 실적, 가족관계 등 전방위적인 '신상털기'가 이뤄지는 만큼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 서류검증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김 지명자가 후보로 지명된 이후부터 관련 서류를 준비했다는 것은 박 당선인이 인선 과정에서 기본적인 검증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현재 인수위 안팎에서는 박 당선인의 인사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게 형성되고 있다. 아울러 앞으로 지명하게 될 장관 후보자들까지도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고 있다.
□ MB정부 초반 '줄낙마'…'부동산 투기'가 원인 =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와의 '데자뷰'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만큼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MB정부 역시 출범 초반 장관급 후보자 인사 검증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였던 2008년 2월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 자진 사퇴했다.
이 후보자는 후보로 지명된 지 엿새만에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했으며 남 후보자는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와 강경한 대북관으로 일찍부터 부적격 논란이 휩싸였다.
이에 더해 부통산 투기, 자녀 교육비 부당 환급, 논문 건수 허위신고 문제 등 도덕성 시비까지 일자 남 후보자는 끝내 자진 사퇴했다.
박 후보자 역시 김포시 일대의 농지를 매입하는 등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됐고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것일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놨고 결국 자기 말에 발목이 잡히면서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연이은 낙마에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감내해야만 했다.
□ '보안·불통' 朴 인사…'줄낙마' 재연되나 = 김 지명자 외에도 앞으로 박 당선인이 지명해야 할 장관 후보자만 17명이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장관급 격상된 경호실장 등을 포함하면 20명이 훌쩍 넘는다.
다음달 25일로 예정된 대통령 취임식까지는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을 뿐더러 다음달 중순 정도에는 청문회를 진행해야 하는 일정을 감안하면 실제로 남은 시간은 열흘도 되지 않는다.
특히 장관 후보자들은 기본적으로 인사청문회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문제는 박 당선인이 정부에 관련 서류 요청 등 인사검증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사 검증 시스템을 갖춘 정부에 요청을 하면 일은 수월해지겠지만 해당 인사가 새어나갈 가능성을 우려해 박 당선인이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박 당선인은 별도의 자체 검증팀을 가동했다고 알려져 있고 일부에서는 이 팀을 '삼성동팀'으로 부르며 박 당선인의 최측근 몇 명만이 인사 검증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대개 후보 대상을 검토할 때 2~3배수를 후보군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박 당선인의 검증팀은 단 몇 명만이 장관급 인사 후보군 60여명을 검증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당연히 거대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에 비해 치밀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번 김 지명자의 경우처럼 언론에서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 등 인선도 언론의 검증대에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비서실장은 청문회는 거치지 않지만 '박근혜 정부'에서의 비서실장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인사권을 주무르는 만큼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다.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등 도덕성이 흠집이 갈 만한 각종 의혹이 제기된 비서실장이 사실상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그것을 행사한다면 '박근혜 정부' 인사 자체에 대한 깊은 불신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줄낙마가 사태가 벌어졌던 것도 정권교체기였던 탓에 참여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는 것이 정설. 이를 감안하면, 박 당선인의 인사 검증은 향후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