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복지지출 확대위한 증세 우선순위 부가가치세"
朴 당선인 "세율 인상은 최후 보루"…재원확보 현실성 논란
정치권, 증세 방향성 놓고 '대립각' 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성장과 분배는 완전히 다른 길"이라는 고전적인 경제학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지만, 박 당선인은 복지지출 확대로 서민·중산층의 소비여력 등을 높이고 경제민주화로 대·중소기업이 함께 발전해 국가 전체적인 성장을 이끌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특히 박 당선인이 제시한 복지확대 정책은 기존 국가 예산 외에 추가로 천문학적 재원이 요구되고 있다.
당선인 측은 5년간 135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정부와 조세·재정전문가들 사이에선 105개 지역공약을 제외하더라도 270~300조원의 추가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우선 부족한 재원을 불필요한 정부 예산지출을 줄임과 동시에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암암리에 형성된 '숨은 세원'의 보고(寶庫), 현금거래와 탈세로 대표되는 '지하경제'에서 찾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한해 국가 GDP의 24%, 약 350조원 상당으로 추정되는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당국의 징세행정력을 강화해 최소 한해 5조원~6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한 현실성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추가세수를 계획대로 모두 확보해도 모든 공약을 원안대로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일 OECD(경제개발협력기구)가 언급한 한국 정부에 대한 증세 우선순위 권고내용은 향후 정치권에 또 다른 '풍파'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 OECD "증세, 소득·법인세보다는 부가세 우선" = 지난 5일 한국을 방문 중인 OECD 실무진들은 KDI(한국개발연구원)와 OECD가 공동개최한 '한국의 사회정책 과제' 컨퍼런스 참석해 한편의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한국의 복지지출 규모를 OECD 평균 수준까지 높일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선 정부 지출구조를 대폭 개선함과 동시에 일부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보고서는 향후 증세방향과 관련 "소득세, 법인세 등 증세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는 직접세보다는 부가가치세 등 간접소비세를 중심으로 증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국가 예산부족으로 증세를 단행할 경우, 부가세부터 올려야 한다는 OECD의 권고(?)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2012 한국 경제보고서'를 발표 당시 한국을 방문한 앙겔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현재 한국의 부가세율은 10%로 OECD 평균 18%에 비해 굉장히 낮은 수준"이라며 "보다 많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자와 고용을 저해하지 않는 소비세 인상을 검토해야 하고, 부가세율에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연구원이 제안하는 조세정책 방향성도 이런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조세연구원은 지난해 9월, 개원 20주년 기념해 발표한 '중장기 조세·재정정책 보고서'를 통해 증세 우선순위 고려 시 법인세보다는 부가세와 소득세를 우선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조세연구원은 최근 당초 통념과 달리 부가세에 소득역진성이 없어 향후 증세과정에서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생활필수품 품목 등은 주로 면세대상이 많아 세율인상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논리다.
□ 세율 2%p 올리면 '10~15조원' 추가세수 확보 = 이런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선 전후로 부가세 인상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경제민주화 논의 좌장역할을 맡았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단장은 차기 정부 '30조 재원확충' 로드맵을 밝히면서 "부가세율 2%p 인상을 통해 10조원 안팎의 세수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록 김 전 위원장이 불과 하루 만에 개인적인 사견에 불과하다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이후에도 복지재원을 위한 부가세 인상 논의는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1999년 5월~2000년 1월)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뒤, 16~18대 민주당 3선 국회의원으로 활약한 강봉균 건전재정포럼 대표도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가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특히 35년간 고정된 우리나라의 부가세율(10%)을 지적하면서, 선진국과 비교해 상당히 낮고, 현재 걷어지는 세수를 고려할 때 2%p만 올려도 15조원 세수가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2%대로 낮아진 저성장 기조에 별도의 증세 없는 국채 발행은 재정에 부담을 준다는 논리다.
정부는 현 단계에서 원칙적으로 부가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지만, 부가세율 인상 시 상당한 재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해 부가세수는 최근 평균 50조원이 넘어서 소득·법인세수 보다 많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부가세율을 2%p 정도 올릴 때 10조원 이상의 추가세수가 예상 된다"말했다.
참고로 정부는 올 한해 총 58조9893억원의 부가세가 걷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소득세(50조5950억원), 법인세(47조9978억원) 등 주요 직접세목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이미 간접세인 부가세가 소득, 법인세수 규모를 뛰어넘은지는 한참됐다.
□ 朴, "세율인상은 최후 보루"…'국민대타협위원회'로 가능성 열어둬 = 이 같은 일련의 증세논의에 대해 현 시점에서 박 당선인의 입장은 확고한 상태다.
그는 일단 세율인상을 수반하는 '직접 증세' 방식보다는 지하경제 양성화 및 비과세·감면 정비 등 '간접 증세' 방식을 통해 최대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현금거래가 중심이 되는 지하경제 분야에서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세수확충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재원확보 계획에 대해 조세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우선 비과세·감면 정비는 그동안 정부 내에서도 꾸준히 추진했지만 정치권 반대로 대규모 정비가 사실상 어렵고 일부 제도는 서민·중산층 지원목표가 강해 정부 입장에서도 무조건 단칼에 없애기 난감한 측면이 있다.
또한 국세청의 FIU(금융정보분석원)법에 따라 연간 5~6조원의 세수를 확보한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상당하다. 연간 1000만건이 넘어가는 CTR(1000만원 이상 탈세·자금은닉혐의)자료 중에서 실제로 과세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는 것.
특히 고소득층의 경우 이미 이런 법 개정 분위기를 의식해 과세회피를 위한 퇴로를 만들어놓고 있고, CTR 자료는 그야말로 '원석(原石)'에 가까운 성질로 이 중에서 탈세혐의를 찾아내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저런 세수확보가 가능하다고 추산했는지 모르겠다. 여기 저기 돈 드는 공약을 실천하려면 결국 새 정부가 세율 인상 등 직접적인 증세를 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 당선인도 스스로도 증세 여지를 남겨둔 상태다.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 "증세가 필요한 상황이 올 경우 국민대타협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증세 여부를)결정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 "부가세 인상은 전선(戰線)"…정치권 '증세논쟁' 예고 = 새 정부 출범 전이어서 수면 아래에 있는 모습이지만, 향후 정치권에선 증세논쟁이 다시 불 붙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무엇보다 매년 8월경 정부가 발표하는 세법개정안 발표를 전후로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당선인이 추구하는 간접 증세 방식의 재원 확보 한계성이 드러날 경우, 야권이 추가 증세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증세방식을 두고 '격론'이 예고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소득, 법인세율 인상을 가급적 지양하자는 입장이지만, 민주통합당은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추가증세를 역설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국회 세범심의 과정을 반추해 봤을 때도 어느 정도 예상되는 대목이다.
당초 작년 11월부터 세법심의를 시작했던 여야는 대선 전까지 소득, 법인세 개정안에 뚜렷한 합의점을 찾기 못하고 대선 이후로 결정을 미뤘다. 대선 이후에도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여야 정치권은 결국 해를 넘겨 진행된 본회의에서 수정대안 '끝장 표결'까지 진행하는 등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야권은 작년 연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내에 조세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만큼, 이 자리에서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추가증세 논의를 이어가자는 입장이다.
야권은 고소득층, 대기업에 대한 증세가 선행되지 않은 간접세 인상 방안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대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작년 연말 세법심의 과정에서 "여권 내부에서 부가세 등 간접세 인상안이 거론된 바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민주당과 전선(戰線)을 형성한 것"이라며 "별도의 추가증세 없이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간접세 인상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