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 사실상 불가능…與 '공약 후퇴' 불가피
野, 부자감세 철회 등 '증세' 주장…거부 심리가 '걸림돌'
박근혜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세법개정안에서 비롯된 중산층 근로자 증세논란은 사그라들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 실현과 복지수요에 따른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불가피론'과 '증세 없는 복지'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 충돌하고 있다.
특히, 증세라는 '고양이 목의 방울'을 과연 누가 달 것인지가 여야 모두에게 '딜레마'인 상황이다.
증세불가 입장을 내건 정부여당으로서는 증세 없는 복지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공약후퇴 논란을 지적받을 수밖에 없고, '증세'로 돌아설 경우 '증세거부 심리'를 극복하는 게 관건이기 때문. 후자는 야당에게도 향후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 8일 발표된 개편안은 소득세의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꾸고 세(稅)부담 기준선을 연소득 3450만원으로 해 '월급쟁이 세금폭탄'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며 발표한 지 5일 만에 세 부담 기준을 연소득 5500만 원으로 조정한 수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소득세제 수정개편으로 연간 약 4400억 원 세수가 줄어들게 돼 복지공약 실현을 위한 세수확보에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어서 '증세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현재의 세수와 재정 현실에서 보수 진영은 '복지 공약'의 후퇴를, 진보 진영은 '증세'를 주문하고 있다.
□ 정부여당, '증세냐, 복지공약 후퇴냐' 딜레마 = 정부여당은 '증세냐, 공약후퇴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줄곧 '직접 증세' 없이 탈세 근절,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조정 등으로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탈세 근절과 지하경제 양성화 등이 임기 내 이룰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다 세수확보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23일 <조세일보>와의 통화에서 "직접증세보다 지하경제양성화나 비과세 감면 등을 우선순위로 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것으로 135조원의 재원마련이 가능하지 않다"며 "세율이나 과표구간 등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며 '증세'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공약수정'에 대해서도 "복지확대와 재정건전성 둘 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들"이라며 "다만, 증세를 당장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때문에 수입과 지출을 감안한 '공약 수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복지공약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심재철 최고위원 등은 "복지공약을 그대로 실천할 것이냐, 아니면 증세를 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지도부는 임기 6개월 만에 '공약 수정'을 할 경우 역풍을 우려해 최대한의 세수확보 방안을 꾀하고 있다. 이는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데다 임기 초부터 '증세' 논란을 겪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증세'는 선거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이슈이기 때문에 당에서 나서기 어려운 문제"라며 "'증세'를 잘못 건드리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가 불거진다. 또, 공약을 후퇴하는 문제도 어렵다"고 난감해했다.
□ 野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증세 거부감' 극복이 관건 =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이라며 '증세'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야당에게도 국민들의 증세거부 심리를 극복하고 '증세'를 어떻게 설득할지는 난제로 남아 있다.
때문에 민주당은 MB 정권의 ‘부자감세’ 철회를 선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원래 걷던 세금을 다시 걷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덜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또한, 최고세율 과표 구간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내려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주장한다.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22일 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세무조사로 기업을 작살내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해도 계속 재원이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우리 당은 '부자감세'를 철회해 원래 걷던 세수를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은 "복지확대에 따른 증세 부담 여론은 높다"며 '부자증세', '사회복지세' 등을 주장하고 있다. 즉, 중단 없는 복지 공약 실천을 위해 적극적 증세를 회피할 수 없다는 것.
정의당은 전날 7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공평과세, 복지증세를 위한 연속토론회'를 추진하기로 했고, 진보당 김재연·김미희 의원도 기자회견을 통해 "증세 없이 복지를 하겠다는 말은 상호 모순되는 헛된 눈속임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국민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보 진영은 다만, 증세거부 심리에 대해 "과거 보수 진영은 세금폭탄 등으로 재미를 본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극심해지는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등 심각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 국민을 설득하고 제대로 복지 혜택을 준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