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8·28 전·월세 대책 발표 이후 꽁꽁 얼어붙었던 주택시장에 과연 얼마나 온기가 되살아날 지 정책당국은 물론 부동산 업계도 마음을 조이고 있다.
서울 강북과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매수심리가 조금씩 살아나는 조짐은 엿보인다. 특히 6억 원 이하 아파트가 많은 서울 강북과 수도권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매수 관련 문의가 부쩍 늘고, 국토교통부와 우리은행에는 1%대 저금리 대출인 신형 모기지(장기주택담보대출)상품과 관련된 문의 전화도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반면 6억 원 이상 주택이 몰린 서울 강남권 아파트 단지의 경우 대책 발표 이전보다 더 침체된 분위기라고 볼멘소리다. 저금리 모기지 대출을 받지 못하는 데다, 6억~9억 원 이하 아파트 경우 취득세율이 지금과 같은 2%로 유지돼 세금혜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세물건의 품귀현상이 심한데다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려 기존 전·월세 수요가 일정 부분 주택 매매로 돌아서는 등 시장 분위기는 다소 개선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작 집을 살 여력이 있는 고가 전세 세입자들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전체 수도권 시장 활성화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기대감에서 호가만 뛰거나 일부 급매물 소화 과정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8.28 전․월세 대책은 전세수요를 줄이고, 임대주택공급을 늘리고, 세입자의 전․월세 부담을 낮추어주는 세 가지가 핵심이다. 전세수요를 줄인다는 말은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시킨다는 의미다. '장기 저리로 돈을 대줄테니 전세 살 돈으로 아예 집을 사라'는 얘기다. 매매 활성화로 전세 값을 잡겠다는 정책 취지다.
동시에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민간임대주택을 활성화해 임대주택공급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다만 공급확대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전․월세를 살고 있는 세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저소득층의 월세 소득공제를 확대키로 했다.
전세 수요를 매매로 돌리기 위한 파격적 조치로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서민 중산층에게 전․월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지원하는 '생애 최초 내 집 마련 모기지'가 주목받고 있다.
수익공유형 모기지는 20년 동안 1.5%로 집값의 70%까지 대출을 해 주택을 구입토록 한 후 나중에 손익을 정부와 나누는 새로운 제도다. 손익공유형모기지는 대출 없이 국민주택기금으로부터 40% 지분투자를 받고, 집값 상승 이익뿐만 아니라 손실까지도 국민주택기금에서 함께 공유하는 지분형 모기지다.
이 두 가지는 부부 합산 연소득 7천만 원 이하 생애 최초 구입자에게 적용된다. 전․월세 폭등에 대한 걱정 없이 전․월세보다 아주 낮은 금리로 세를 살다 만기가 되면 자기 집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전세와 매매의 중간적인 상품으로,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돌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정책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주택 실수요자 입장에서 1%대의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전세 값 정도의 자금만 갖고서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정부 스스로 이번 대책은 과거와 같은 단순한 대출일변도 정책이 아니고, 오히려 가계부채까지 고려해 이자부담을 줄여주고 빚이 아닌 투자개념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빚이든 '투자'든 돈을 빌리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투자가 될 수 있겠지만 갚을 수 없는 사람한테는 빚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다.
정부는 현재의 전․월세 불안의 근본원인을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수급불균형에서 찾고 수급을 맞추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전세가격 급등의 표면적 원인은 물론 수급 불균형이다. 세입자는 전세시장으로 몰리는데, 집주인은 자꾸만 전세를 월세로 돌리니 가격이 뛰고, 그만큼 공급도 급격히 줄어든다.
그러나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은 부동산거품이 빠지는 시기에 빚어지는 전형적인 부작용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집주인들은 집값 상승기에는 전세금을 종자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면 레버리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집값 상승 기대가 거의 없어진 데다 저금리까지 겹쳐 집주인들의 전세 공급 유인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저금리 아래에서 동일한 수입을 올리려면 전세 보증금을 대폭 올리거나 월세로 돌리는 것 외엔 별 방법이 없다. 세입자들 역시 집값 상승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서 취득세 재산세 부담에 집값 하락 위험까지 떠안으며 굳이 집을 살 이유도 없다.
결국 최근 전·월세 급등은 세입자의 총주거비용 최소화 전략과 집주인의 부동산 운용수익 극대화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며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어우러진 자연스런 시장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집주인의 탐욕 대(對) 과 세입자의 희생 구도로 인식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전·월세 대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진실은 수요공급곡선 너머에 있다.
지금의 전․월세난은 주택시장의 근본적 변화에서 비롯된다. 집값하락 추세가 굳어져가는 데다 매매시장에서 불로소득을 추구하기 어렵게 된 투기자금의 임대차 시장으로의 진입, 이명박 정부의 동시다발적 도심재생사업으로 인한 기존주택의 대규모 멸실, 공공임대물량의 급감 등이 복합적으로 얽혔다. 있는 그대로의 시장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세자금 대출 확대가 전세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것은 거의 법칙이다. 전세대란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집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인데도 매매 활성화로 집값을 부추겨 전세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일시적으로 문제를 이연시킬 뿐 장기적으로는 가계부채 폭증 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의 전세대란에 대한 뾰족한 대책은 없다. 장기적으로 과도한 수도권 집값을 적정수준으로 하향 안정화시켜 정상적인 주택구매수요를 유도하는 것이 정책의 정도(正道)다. 전․월세난의 해소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시인하고 시민들에게 당분간 고통을 감내해달라고 호소하는 편이 정직한 정부의 자세다.
집값 안정 내지 하락이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이는 '부동산 광풍'의 업보로 우리 사회가 감내해 날 수밖에 없다. 다만 급격한 집값 하락이 금융부실 등 큰 부작용을 불러오지 않도록 어떻게 연착륙 시키느냐가 과제다.
최근 몇 년 사이 집값의 점진적 하락 내지 정체는 바람직한 조정방향으로 읽혀진다. 효과도 없을 부양책을 남발해 문제를 근원적으로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장에 맡겨두는 게 상책(上策)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에게 그런 용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