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이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며 이 땅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6.25전쟁이 발발하기 4년 전이었다. 나는 경상남도 남단에 위치한 진주에서 태어났다. 오랜 일제의 압박이 끝나고 조국해방이 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함안 조씨 집성촌인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내송리에서 평범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생 밭을 갈고, 돼지를 치는 고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지독한 가난과 집요한 일본인들의 수탈을 피해,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핍박을 받으며, 오직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매일 겨우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양의 음식만이 아버지에게 주어졌고, 지붕이 없는 곳에서 새우잠을 자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 매일 배고팠고, 매일 추위에 온몸을 떨어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마을 뒷산의 그늘이 온 마을을 뒤덮고,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흙길을 따라 걷는 소의 워낭소리, 한적한 고향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아무 탈 없이 살아내야만 하는 일이 숙명과도 같이 아버지의 목을 졸라댔지만, 오히려 극한의 상황이 아버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어 갔다. 왜냐하면 아버지에게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힘든 하루하루 속에서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여인, 그 여인의 이름은 강성이였다.
그녀 역시 가혹한 일제의 수탈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치는 배를 탔다고 했다. 같은 조선인이었고, 더군다나 같은 고향사람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먼 타국 땅에서 운명처럼 만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딱히 의지할 곳 없는 일본에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조금씩 마음을 나누어 갔으며, 결국 결혼했다.
당시 직조공장의 공원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한 곳에 적을 두지 않고 일했던 시절보다 수입도 많아지고, 생활도 점차 안정되어 가기 시작했다. 힘들고 배고픈 시절이었고, 새우잠을 자야 할 정도로 비좁은 집이었지만, 돌아갈 곳이 있었고 늘 지친 몸을 보듬어 달래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마음속에 자리했던 절망은 어느새 희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곳에서 형과 누나를 낳았다. 식구가 하나둘 늘기 시작하면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늘 아버지의 어깨를 짓눌렀다. 사흘을 일해도 하루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빈번했다. 또 어머니의 얼굴은 점차 빛을 잃어 어두워져만 갔고, 형과 누나는 배고픔으로 눈가에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버티는 가족을 보고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홀로 눈물을 흘렸다. 오직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몇 번이고 도망치려 했었다. 하지만 힘없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두 아이가 떠올라 더욱 이를 악물고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고통 속에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하겠다는 내용의 항복선언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일본 전역은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본토에 핵폭탄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기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일본 열도는 온통 울음소리로 가득 찼고, 조국 대한민국에는 '대한독립만세'라는 함성과 함께 태극기가 방방곡곡에 물결쳤다.
'이젠 나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
아버지는 조국의 해방 소식을 접한 뒤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조국으로 돌아만 간다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동안 겪어야 했던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한꺼번에 해소되리라 믿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한껏 부푼 꿈을 안은 채 가족과 함께 조국으로 떠나는 배에 올라탔다. 하지만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조국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기나긴 세월 동안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모진 풍상을 겪어내야 했던 조국은 청운의 꿈을 안고 돌아온 아버지를 그렇게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땅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따뜻함이 아니라, 극심한 기근과 고통이라는 차디찬 현실이었다.
아버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 천전초등학교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그곳에서 작은아버지가 자그마한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정착하신 것이라 했다.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일했으나 지극히 내성적이고 사교성이라곤 전혀 없었던 분으로, 손대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강제로 겪어야 했던 타향살이의 고통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매일 뱃가죽을 쥐어뜯는 듯한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배고프다고 목이 터져라 서럽게 우는 두 아이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은 아버지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것은 마치 날이 선 송곳으로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과도 같았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지만, 이제 막 해방된 조국의 현실은 살아남은 자에게 그저 고통의 나날을 안겨다 주었다.
나와 남동생은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 자리를 잡은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생일을 잊고 지나간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날은 잊을 수 없는, 바로 6월 25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고 정확히 4년 후인 6월 25일 새벽 4시, 고막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포탄이 38선을 넘어 여기저기에 떨어졌고, 순식간에 수도 서울은 불길에 휩싸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당시 내 나이 다섯 살.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 아침밥을 먹기도 전 꼭두새벽의 일이었다.
이후 내 생일이 되면 '상기하자 6.25', '잊지 말자 6.25'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거리 곳곳을 수놓았고, 시민들은 붉은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도시에 고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갔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참 씁쓸한, 그리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세 번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3년간이나 이어졌던 6.25전쟁은 이 세상에 남은 모든 걸 앗아갔다. 국군과 북한군의 밀고 밀리는 대치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민심은 극으로 치달았고, 결국 서로 간의 살육전으로 이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이 이어졌고, 패권을 잡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며 단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바뀌어갔다.
인민재판에 강제로 끌려나온 사람들은 흥분하여 눈이 뒤집힌 사람들에게 죽창으로 온몸이 난자당해 피를 토하며 꼬꾸라지고, 다시 저녁이 되면 죽창을 들고 인민재판을 주도하던 사람들이 국군의 총칼에 시커먼 주검이 되어 마을 곳곳에 버려졌다.
당시 아버지는 아직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인민군 자원입대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집에 드나들었고, 아버지는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놓고, 그 안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숨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마루 밑에서 나와 가족들을 불러모았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이렇게 숨어만 있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이 인민군 군대에 끌려가 개죽음을 당할 순 없다. 일본으로 다시 가야겠다. 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친 듯이 돈을 벌어 이 지독한 가난을 면하겠다. 반드시······.”
아버지는 아내와 네 명의 자식을 고향에 두고 밀항선을 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연신 눈물을 흘리셨다. 남편이 자신과 네 명의 어린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어머니는 절망감과 두려움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군데군데 기워 이제는 옷이라고도 할 수 없는 누더기 치마를 부여잡고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그저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버텨내야 한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돈을 벌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한다.'
결국 3년간의 전쟁은 우리 가족을 다시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고 말았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한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없는 가족의 몰골은 처참했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아버지가 언제 돌아올지는 더더욱 모를 일이었다. 다시 우리 가족은 전쟁의 두려움과 매일매일 이어지는 배고픔과의 싸움 한가운데로 내동댕이쳐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