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한 전쟁고아 얘기. 소년은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미 해병상사가 있었다. 겉은 투박했으나 속은 살가웠던 상사는 그를 입양, 미국으로 데려간다. 상사와 부인은 피를 나눈 아들처럼 소년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영명한 소년은 하버드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원에 진학했다가 미 공군에 자원입대, 장교가 된다. 10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와 눈부시게 종군한다. 전역 후 청년은 미국은행 한국지점에 입사, 승승장구. 외국은행 한국지점장과 세계최대 생명보험회사 푸르덴셜의 한국법인회장을 거쳐 본사 국제보험그룹 CEO에 오른다. 남은 꿈은 아버지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세워 한국유학생을 돕는 것. James Choi Spackman, 최석진회장이 그 소년이다. 그야말로 꿈같은 아메리칸 드림이다.
#장면2: 신유숙.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주인공. 세 살 때 아빠는 사고로 숨진다. 삯바느질로 연명하던 엄마는 너무 힘들어 네 살배기 유숙을 스웨덴에 입양시킨다. 수잔 브링크가 된 것. 수잔은 양모와 양오빠의 모진 매질, 욕설과 인종차별을 견디다 못해 열세 살에 목숨을 끊으려 한다. 첫 번째 자살기도. 그 후 수잔은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불의의 임신을 한다. 미혼모가 된 그녀는 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으나 그마저도 친구에게 뺏긴다. 두 번째 자살기도. 그랬던 그녀가 대학진학 후 한 선교사의 도움으로 모 방송국의 입양아 가족찾기 프로그램에 출연, 친모와 상봉한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 다 울었다. 필자도 울었다.
양극의 두 장면 모두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무자식 상팔자. 아니다. 거기에는 자식은 있어야 하고, 없으면 입양을 해서라도 가져야 한다는 페이소스가 짙게 배어있다. 자식 있는 이도 가끔씩은 입양을 꿈꾼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 먹기 전 법적으로 챙겨볼 것이 있다. 입양은 냉정한 현실이기 때문.
친양자는 혈족과의 관계 종료
양자제도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경제적·정서적 안정을 누릴 수 있게끔 새 가정을 찾아주기 위한 것. 양자는 입양일 이후 친생자와 동일한 법적 지위에 선다. 양부모도 상속과 부양의무 측면에서 큰 변화를 맞는다. 입양요건이 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양자는 일반양자와 친양자로 나눠진다. 일반양자는 입양되더라도 친(生)부모와 여전히 혈족관계에 있으며 친부모 성과 본을 따른다. 반면 친양자의 경우 법원의 입양선고일로부터 친생부모 등 혈족과의 친족관계가 종료된다. 양자가 양친의 성과 본을 따르고 가족관계증명서에도 양친의 친생자로 등재된다. 친양자는 3년 이상 혼인 중인 부부가 공동 입양해야 함이 원칙이고, 친양자로 될 자가 미성년자여야 하는 등 요건이 일반양자에 비해 훨씬 까다롭다.
입양 승낙 의사표시 해야 유효
입양은 당사자 사이에 실질적으로 친자관계를 형성하려는 입양의사의 합치를 요한다. 부모자식 간 신분관계를 실제 형성하려는 의사없이 다른 목적을 위해 입양신고를 하는 가장(假裝)입양은 무효라는 얘기다.
입양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된다. 그 나이에 어떤 식으로 입양을 승락해야 하는가. 양자될 사람이 13세 이상 19세 미만 미성년자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입양을 승낙할 수 있다. 13세 미만 미성년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이 대신 입양을 승낙할 수 있다. 법정대리인이 입양에 동의하거나 대신 승낙한 경우에도 가정법원 허가가 있기 전까지는 언제든 이를 철회할 수 있다. 숙려기간을 가지게 한 것.
2013년 이전 민법에서는 일반양자의 입양은 당사자 간 합의와 신고만으로도 성립될 수 있었다. 입양 성립에 법원이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제도는 양부모의 양자양육현황을 따로 고려하지 않아 양자의 복리(행복과 이익)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다자녀가구에 대한 복지수혜 등 엉뚱한 목적에 입양이 남용됨을 못 막는다는 비난도 받았다.
개정민법은 양자될 이가 미성년자이거나 피성년후견인이면 반드시 가정법원 허가를 받도록 했다. 법원허가 없는 입양은 무효다. 법원은 양자될 미성년자와 피성년후견인의 복리를 위해 양육상황·입양동기·양부모의 양육능력·기타 사정을 고려, 입양을 불허할 수 있다.
민법, 양자될 사람의 복리 우선
현행민법은 양자를 받아들일 이보다 양자될 이에게 더 큰 관심을 둔다. 법원은 양자될 이의 복리를 어디까지 고려하는가. 손자를 친양자로 입양하려는 케이스에 관한 판례가 잘 설명해 준다.
A와 B의 딸 C는 딸 D를 둔 미혼모. A와 B는 외손녀 D를 친양자로 입양코자 했으나 모든 심급에서 기각됐다. 기각사유는 첫째, 생모·외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터에 외조부모 A B가 D를 친양자로 입양하면 모녀가 자매가 되어 가족질서에 중대한 혼돈이 생기고 이는 D의 복리에도 반한다. 둘째, 입양목적이 C의 용이한 혼인을 꾀하는 데 있을 뿐 D의 복리는 안중에 없다는 것. 셋째, 지금도 A B의 D양육에 어려움이 없는데 굳이 친양자로 입양할 현실적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유사사례에서 손자입양이 인정된 반대의 경우도 있다. E와 F의 딸 G는 아들 K를 둔 미혼모. E F는 외손자 K의 친양자 입양을 법원에 청구, 허가 받는다. 그 이유는 첫째, E F는 G와 K의 생부 J간 혼인을 반대했고, J의 부모 또한 K의 양육은 물론 그 비용부담조차 거절했으며 한번도 K를 보려 한 적 없었다. 둘째, 생후 지금까지 외조부모 E F가 K를 양육했고 엄마 G는 일주에 한번 정도 K를 만나고 있어, 조금은 사리 분별할 나이(12세)의 K도 E F를 친부모로 알고 아빠·엄마로 부른다는 것. 셋째, 그런 K를 아들 없는 E F가 친아들로 삼아 대를 잇기를 원하고 생부모 G J도 입양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아이 장래와 복리를 위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입양이 허용되는 터에 혈연관계 있는 외손자의 친양자 입양을 불허함은 가혹하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나, 무엇이 아이 복리를 위한 것이냐를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결론은 위 대법원판결과 정반대나, 아이 복리를 정점에 놓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맥락은 같다.
법원허가 없는 입양신고는 무효
입양 성립에는 형식요건도 따른다. 가족관계를 신고해야만 입양 효력이 생긴다. 입양신고가 없다 하더라도 당사자 간 입양의사 합치가 있고 기타 실질요건을 갖추면, 친생자 아닌 자를 허위로 출생신고해도 입양은 성립될 수 있다.
입양 합의가 없거나 대락(代諾)권자의 승낙이 없는 경우, 존속 또는 연장자를 양자로 삼는 경우, 또는 법원허가 없이 입양 신고한 경우의 입양은 무효다. 그 외의 입양실질요건을 못 갖추면 취소사유가 되나, 다른 법률행위의 취소와는 달리, 입양 취소의 효력은 입양신고일로 소급되지 않는다.
미성년자 파양은 재판으로만 가능
양자관계는 파양으로만 해소된다. 당사자 간 파양의사 합치가 있고 이를 신고함으로써 협의상 파양 효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양자가 미성년자 또는 피성년후견인인 경우 협의상 파양은 불허되며, 재판상 파양만 허용된다.
파양 사유는 다음과 같다. ①양부모가 양자를 학대 유기하거나 양자의 복리를 현저히 해친 경우 ②양부모가 양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 ③양부모나 양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불분명한 경우 ④기타 양친자관계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사유가 있는 경우이다. 이럴 때 법원에 파양을 청구하면 된다. 친양자의 경우에는 파양사유가 매우 제한적이다. 위의 ①과 같은 경우와 친양자가 양친에 패륜행위를 저질러 친양자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때만 파양을 청구할 수 있다.
최근 파양 판례는 이렇다. A는 B를 양녀로 입양했고 B는 C와 혼인한다. C는 B가 실질주주인 甲회사의 경영에 개입, A의 형제를 횡령·배임으로 고발하고 B는 甲의 해산을 법원에 청구한다. 치매로 한정치산자가 된 A의 법정대리인이 파양을 신청하나 대법원은 기각한다. 기각사유는 첫째, 위 ②의 “부당히 대우한 양자”의 해석상 양자의 배우자는 “양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둘째, B C가 A와 그 가족을 상대로 수차 고발하거나 제소했고 분쟁 후 3년간 A와의 연락을 끊었다는 사정도 위 ④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기왕 입양을 했으면 찬란한 끝을 봐야 할 터. 대법원이 파양에 관해 엄히 판시한 것도 그런 바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의 지인도 결혼 당시 남편과 “아이는 하나만 낳고 하나는 입양하자”고 했고 약속은 실천됐다. 놀랍게도 입양된 여아의 얼굴이 오빠와 똑 닮아갔다. 긴 세월 한 가족으로 희로애락을 같이 했기 때문이리라. 공동집필 김용상‧이송호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