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한지 벌써 두 달.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금이 한국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이라며 자신의 정책수단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있다.
취임 8일 만에 총41조원의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최경환식 양적완화를 선포했고, DTI(총부채상환비율),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등 주택시장을 얼어붙게 했던 부동산 금융규제도 과감히 풀었다. 소득세제를 개편하고 서비스업 투자활성화대책에다 한국은행을 압박해 기준금리인하까지 이끌어냈다.
‘실세 부총리’의 강력한 경제회복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경제회복세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확실하게 경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통화정책이 유지돼야한다”며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집권당의 의견을 아랑곳 않으며 내년도 예산안 20조원 증액안을 밀어붙이고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국가 재정건전성을 놓고 한 치 양보 없는 설전도 벌였다.
최 부총리의 이런 뚝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돈독한 신임 때문으로 보인다. 정․관가에서는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할 때 “최경환만 바라본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총리를 제치고 부통령이나 정무장관 역할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제살리기’에서 박근혜 정부는 출범이래 1년 6개월을 허송세월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는 여야가 없고, 이에 ‘올인’을 선언한 최경환 경제팀에 국가적 견지에서 힘을 실어 주어야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고 각론이다. 최 부총리는 “경제를 살려낼 수 있다면 지도에 없는 길도 가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최경환표 부양책’들은 흘러간 압축성장시대의 단기부양책들을 그대로 답습한 인상이다.
정부의 부양책은 회복의 불씨를 사방에 지펴 경제 각 부문에 불이 활활 붙게 하는 데 있다. 불씨를 잘못 지피면 불은 붙지 않고 불쏘시개만 태울 수 있다. 경제가 성장국면에서 일시적인 경기후퇴를 겪을 때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내리는 전통적인 ‘양적완화’ 방식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오늘의 세계경제는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어 경기부진이 만성화되고 있다. 경제침체는 경기사이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돈을 뿌려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결과적으로 빚만 늘어난다. 풀린 돈으로 경제가 반짝 살아나는 듯 보이지만 기업 경쟁력과 소비가 되살아나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부작용만 가중된다.
일본은 경기진작을 위해 132조엔을 풀었지만 2년도 안 돼 경제가 주저앉으며 반짝효과에 그쳤다. 아베노믹스도 ‘잃어버린 20년’ 시절의 경제정책을 지금 와서 되풀이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 신흥경제가 세계경제에 편입되면서 자본과 노동과 생산설비는 바야흐로 공급과잉시대다. 값싼 자본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상황에 양적완화로 성장을 자극하는 정책은 약발이 없다. 지금은 저성장 시대라는 새로운 인식아래 경기사이클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근원적 해법을 찾는 경제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빚으로 위기를 탈출하려는 경제활성화 정책은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경제혁신에 역행할 수도 있다. 독일이 빚을 줄이면서도 성장을 이뤄가고 있는 것은 시장경제의 바탕위에서 대기업과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톱니바퀴처럼 협력하며 돌아가는 사회시스템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공생의 원리가 작동하는 이런 틀을 정부가 주도해 짜주어야 새로운 성장 동력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경제의 내수 부진은 지나친 양극화 현상에 따라 대다수 계층이 소비여력을 상실한데서 오는 구조적 문제다. 여기에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적 문제까지 겹쳤다.
중산층 이하의 부채를 줄이고 소득을 늘려야 진짜 소비가 나오고 내수가 살고 경기가 사는 순환이 이뤄진다. 경제 활성화와 소득불균형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야한다.
정부가 내놓은 가계소득 증대방안은 주식부자와 대기업노동자에 혜택이 한정되고, 저임금 개선과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야심차게 내놓은 9·1부동산대책은 재건축 관련 규제를 대폭 풀고 청약제도를 개편해 유주택자의 주택구입을 늘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아울러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중단해 공급과잉이 시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사전에 차단했다.
분양가가 높아 재건축 추진이 수월한 서울 강남 3구, 목동·분당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과 주택구매 여력이 있는 유주택자를 불쏘시개 삼아 부동산경기를 살려보자는 정책의도다.
이 역시 주택시장 활성화에 치우친 나머지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주거복지를 외면했다. 인위적으로 주택가격을 띄우려는 주택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수급을 시장에 맡기면서 저소득층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가계부채 대책은 없고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규제완화만 있는 정책은 투기부양책이라고 비난을 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띄우는 경우 활황을 체감할 정도가 되면 투기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돼 공포의 ‘폭탄 돌리기’ 국면이 재현될 수 있다.
한국경제의 ‘암 덩어리’ 규제혁파를 위해 수많은 규제완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눈 딱 감고 풀어라”는 대통령의 다그침에 규제완화에 따른 부작용은 뒤로 숨고 개혁은 온통 장밋빛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의 카드 및 부동산 규제 완화 폭탄은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터졌다. 2006년 노무현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는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저축은행 사태로 터졌다. 마찬가지로 박근혜정부의 규제혁파 폭탄은 다음의 누군가의 손에서 터질 수 있다.
규제개혁은 ‘부자 배불리기’며 최저임금 개선과 비정규직 차별해소 등 진짜 민생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말라는 볼멘소리들도 이래서 나온다.
역대 경제부총리 및 장관들은 지난 12일 최 부총리와의 간담회에서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한국경제의 구조개혁이 어렵다”며 단기대책보다 강도 높은 체질개혁을 주문했다.
한국경제의 현 상황을 ‘가라앉는 배’, ‘막다른 골목’에 비유하며 “1960∼1970년대 패러다임을 갖고는 규제개혁과 서비스업 발전이 어렵다”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은 재정․금융확대를 통한 단기부양이 아니라, 당장은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에 ‘올인’ 하라는 얘기로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