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로 진군하기 전 마지막 고민을 했다는 '루비콘 강'은 더 이상 나아가면 되돌아 갈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지금 금융권에는 두 명의 인사가 루비콘 강 언저리에 서있다. 이미 강을 건넌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조기통합을 위해 도하를 준비중인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재밌는 사실은 두 인물이 과거 혹은 미래의 '동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또 다른 공통분모를 가진다는 점에 있다.
대표적인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불리는 임 회장은 현재 금융당국 수장을 맡고 있는 행정고시 후배들과 등을 돌렸으며, 하나-외환의 통합을 추진하는 김 회장은 미래의 조직원들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소송 제기한 임영록…당국 징계에 '반발' = 임영록 KB금융 회장이 금융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전면전에 나섰다.
지난 16일 임 회장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직무정지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주 전산기 사태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신에게 중징계를 내린 결정에 정면으로 반발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 금융권에서 '모피아끼리의 반목'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행정고시 선후배 관계인 임영록 회장(20회)과 신제윤(24회) 금융위원장, 최수현(25회) 금융감독원장, 최종구(25회) 금감원 수석부원장 등이 서로 맞고소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KB 내부에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보다 하루 앞선 지난 15일, KB금융 이사회는 긴급 간담회를 열어 "KB금융 조직안정을 위해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사퇴를 권고했지만, 임 회장이 이를 거부한 꼴이 된 것이다.
이틀 뒤 열린 KB금융 이사회에서 임영록 회장의 해임안은 자연스럽게 통과됐다. 다만 이사의 직 해임은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 임 회장이 중도사퇴하지 않는다면 오는 11월에야 거취가 확정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기들끼리의 끈끈함을 자랑했던 모피아들이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은 흔치 않을 일"이라며 "이렇게 된 이상 임 회장과 금융당국 둘 중 하나는 끝장을 봐야 할 판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 "10월중 통합 신청"…정면돌파 나선 김정태 = 금융권의 또 다른 '뜨거운 감자'인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18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산행대회를 마련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는 10월 경 양 은행 통합 승인을 당국에 신청할 뜻을 내비췄다.
이날 그는 "2.17 합의를 지키지 말자는 게 아니고 수정을 하자는 것"이라며 "합의 내용에 통합이 분명히 언급된 만큼 그 시기를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자는 것이며, 근로조건 유지와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두 은행 인사도 2017년까지 투트랙으로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17 합의'란 지난 2012년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으로 인수될 당시 합병논의를 5년 이후부터 진행하겠다는 내용에 금융위와 하나금융, 외환은행, 외환은행 노조가 합의한 것을 의미한다.
당초 하나금융은 지난 8월 이사회를 열고 통합 승인 신청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로 잠시 유보한 상태. 김 회장의 구상대로 내달 신청서를 제출하면 통합논의가 보다 활발해지겠지만, 당장 노조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노조는 김정태 회장의 발언을 놓고 "10월중 승인신청 운운은 금융당국을 무시한 발언"이라며 "불법적인 직원징계를 철회하지 않는 한 어떤 대화도 있을 수 없다"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노조는 합의서 수정 제안과 관련 "헌법도 고칠 수 있지만 정당한 절차를 통해 고쳐야지 개정도 하기 전에 멋대로 위반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 3일 열린 조합원 총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징계대상에 오른 직원 898명에 대한 탄원에 나섰다.
외환은행 사측은 쟁의조정기간에 이뤄진 불법 파업으로 보는 반면 노조에서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조합원들의 당연한 활동에 대한 징계추진은 사실상 직원들에 대한 협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