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거래세, 가장 쉽게 세수 확보 가능해
자본시장 효율성 저하…경쟁국들 낮은 편
많은 국가들이 재정 확보를 위해 금융거래세를 선택한다. 금융거래세의 장점은 가장 낮은 비용으로 세수를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증권거래세의 징세 비용이 다른 세목에 비해 평균 8%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와 함께 증권거래세를 부과하면 투기를 억제하고, 내·외국인 관계없이 평등한 과세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거래 비용을 증가시키고 유동성 감소와 자본의 해외 유출 위험이 커 단점도 적지 않다.
□세수 우려…증대vs감축 의견 팽팽= 금융거래세와 관련한 논의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존 케인스(John M. Keynes)가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증권거래세를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 제안을 한 뒤 제임스 토빈(James Tobin),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등 많은 경제학자들이 거래세 도입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들이 정책적으로 채택돼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꼽히는 미국에서는 주식거래 수수료(정부기관의 예산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금융거래세로 인정)를 부과하고 영국도 인지세를 부과한다. 벨기에, 사이프러스, 프랑스, 핀란드, 그리스, 아일랜드, 이탈리아도 다양한 종류의 금융거래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많은 나라들은 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거래세를 반대하고 있다.
홍범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기획본부장은 "금융거래세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거래 비용 증가와 거래량 감소를 주장하지만 금융시장은 자산의 내재 가치에 투자하는 투자자와 기술적 분석을 따르는 투기거래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거래세의 목적은 투기 억제와 세수 효과에 있는데 어느 정도의 투기거래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반면 금융 산업이 공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감안할 때 시스템 위기가 발생하면 이를 궁극적으로 메워야 하는 것은 재정이다"고 말했다.
또 "금융거래세를 도입하려면 과세 대상이 넓어야 한다. 즉 모든 금융거래에 대해 동일한 원칙을 가지고 부과해야 한다"며 "그렇지만 모든 거래에 금융거래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세가 절반으로 줄었을 때 거래량이 두 배 이상 늘어야 세수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몇 퍼센트의 세수 효과가 있느냐 하는 추정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고 큰 의미가 없다"며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국내 기관투자자의 증권거래세를 낮출 경우 만기일 1조원, 평균 5000억원 정도의 거래 유인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자본 조달 금리가 낮아 차익거래의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이 때문에 왝더독(Wag the dog:주식시장에서 선물시장에 의해 현물시장이 좌우되는 현상)이 심하고 일시 충격의 위험이 크다. 국내 기관투자자의 차익거래가 늘면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모펀드 투자자, 국민 전체의 이익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세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거래량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시장의 장래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자본세 인상vs인하…글로벌 스탠더드는?= 1980년대 유럽의 금융 강국으로 꼽힌 스웨덴에서는 금융 업계 종사자의 임금이 빠르게 늘면서 소득 격차가 심화됐다. 또 빈번한 금융거래가 경제 불안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일면서 금융거래세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1984년 스웨덴 의회는 재무부 반대에 불구하고 금융거래세를 도입, 주식과 채권 순으로 과세 범위를 넓혀갔다. 1991년 금융거래세가 폐지되기까지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 상당수가 영국 런던거래소로 이동하는 등 조세 회피 현상이 심각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금융거래세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의 반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고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11개 국가가 공통으로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유럽이 금융거래세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조세 정합성을 확보하고 금융 부문으로부터 세수를 확보하는 동시에 특정 금융거래, 즉 바람직하지 않은 금융거래를 막기 위해서이다.
주식, 채권, 머니마켓펀드(MMF), 환매 조건부 채권(repo), 증권대차의 경우 거래가격의 0.1%가 거래세로 부과되며, 파생상품은 투자자산 액면가격의 0.01%를 부과한다.
EU에 따르면 11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중 0.4%에 해당하는 340억유로가 연간 세수로 징수될 전망이다. 반면 거래량은 증권거래가 15%, 파생상품거래가 75% 줄어들어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효섭 연구위원은 "조세 형평을 위해서는 증권거래세를 줄이되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많은 선진국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제안했다.
이 연구위원은 "증권거래세가 아시아 국가에 비하면 2~3배 높다. 이를 낮추면 자본시장의 효율성이나 유동성 측면에서는 당연히 발전 가능하다"며 "과거 연기금과 우정사업본부의 차익거래 시 비과세를 허용했다가 폐지하면서 거래량을 감소시켰고 세수를 아예 걷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훈 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양도 차익에 전면 과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며 "금융자본이 자유화되면서 핫머니(hot money)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한 혜택을 제한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웨덴의 금융거래세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알려져 있다. 금융거래량을 감소시키고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가격을 하락시켰으며 세수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며 "하지만 스웨덴의 실패 이유는 제도 설계상 허점이 많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