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공직자윤리위 재취업 심사 1418명 전수 분석
퇴직 공직자 10명 중 4명 '先 취업 後 심사'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낸 A씨는 지난해 4월 한 의료기기 회사에 재취업했다. 그러나 A씨의 인생 이모작은 9개월 만에 끝났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 회사의 주력사업이 A씨가 공무원 시절 맡았던 업무와 연관성이 높다는 이유로 취업을 불허했다. A씨는 재취업 심사가 열리기도 전에 취업부터 했다가 중도 퇴사해야 했다.
육군 모 사단장 출신 예비역 장성 B씨는 지난해 6월 중순 전역한 지 사흘 만에 한 방위산업체에 취직했다. 공직자윤리위는 6개월 뒤 재취업 심사를 거쳐 B씨의 취업을 승인해줬지만 B씨는 사전 취업을 금지한 규정 위반으로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
‘관피아’(관료+마피아)의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최근 5년간 퇴직공직자 10명 중 4명은 공직자윤리위에서 재취업 심사를 받기 전에 입사부터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공직자윤리위 재취업 심사가 취업 후 수년이 지난 뒤에야 실시되거나 업무 연관성이 확연히 드러나는데도 취업을 허용하는 등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이데일리>가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정부공직자윤리위의 ‘재취업 심사 현황’ 자료를 분석할 결과 2010년부터 올해 9월까지 약 5년간 민간 기업 입사를 위해 심사를 받은 퇴직 공직자는 1418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569명(40.1%)은 이미 입사해 근무 중인 상태에서 재취업 심사를 받았다.
취업 제한 판정 기준은 ‘고무줄’이다. 2012년 5.0%까지 떨어졌던 취업 제한 판정비율은 지난해 9.3%로 소폭 높아졌다. 올해 들어서는 9월 말 현재 19.3%로 치솟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재취업 심사가 엄격해진 때문이다. 5년간 전체 심사 대상자 중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은 132명(9.3%)에 그쳤다.
세월호 참사 이전 재취업 심사 탈락 비율이 크게 낮았던 이유는 재취업 대상기업과의 업무 연관성을 해당 부처나 기관이 아닌, 퇴직 전 근무했던 부서 업무에 국한한 영향이 컸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심사 기준이 느슨하다보니 민간 기업간의 유착관계가 의심되는 데도 재취업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는 사례가 매년 수십건씩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 6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2급 이상 고위공직자에 한해 업무 연관성 범위를 부서에서 소속기관 업무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재취업 심사 대상·심사 기준을 두고 정치권 내에서 의견이 엇갈려 여지껏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지난 6일 전체 회의를 열어 정부안을 비롯해 각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을 상정한 데 이어 10일부터 병합심사에 들어갔다.
김춘진 의원은 “사후관리로 연결되지 않는 취업 심사제도로는 관피아를 막는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며 “안전행정부 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가 유기적으로 퇴직공무원의 취업 실태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