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제 확대·감사보수 덤핑 규제 등 다양
기업 경영진 낡은 인식 개선이 우선 과제
기업들의 분식회계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한 외부감사제도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회계감사 환경은 저가 감사보수와 감사인간의 출혈경쟁, 저급한 감사품질과 감사실패, 회계감사에 대한 기업들의 낮은 인식 등으로 회계투명성 담보는 점점 요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9월 30일 조세일보 주체로 열린 '회계감사품질 대토론회'에서 "회계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투자자의 책임을 논하기 어렵고 자본시장의 성숙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학계와 회계업계, 금융당국은 감사인 지정제 확대와 기업 내 감사위원회 역할 강화 등 우리 현실에 맞는 외부감사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 감사인 지정제 확대…안전장치 마련은 고민=감사인과 기업간의 불평등한 지위 개선을 위해 감사인 지정제도 확대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지정제 확대 방안은 자생적인 수요·공급에 의한 시장기능이 아니라는 우려가 있는데다 부정적인 낙인을 두려워하는 기업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 유지를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김동원 안진회계법인 상무는 "기업들은 지정범위 확대가 감사보수 인상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지만 회계분식에 대한 죄의식이나 회계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같은 감사환경은 선진국보다 열악하다"며 "감사보수 인상에 대한 반감보다는 지금까지 지불하지 않았던 정당한 보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재현 중소회계법인협의회 회장은 감사인 지정제 확대와 관련해 공정한 배정을 강조했다.
송재현 회장은 "대형 회계법인에 우선 배정하는 배정방법은 개선해야 한다"며 "특정감사인에 배정이 편중되면 업무량이 과중돼 감사보수의 덤핑이나 부실감사의 부조리가 만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소회계법인에 일감이 없는 상황을 고려해 4대 회계법인에 업무가 편중되지 않도록 감사 수임의 양을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금융당국의 감리 강화…솜방망이 처벌 안돼 = 외부감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진영 금융감독원 전문심의위원은 "감사품질 감리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성이 있고, 감사품질 관리감독 기준을 법제화해 위반할 경우 실효성이 있는 벌칙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분식회계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것은 이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기업이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감사인도 이에 협조했다면 징벌적 처벌을 해서라도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감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리 강화는 물론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이나 감사인에 대해서도 강력히 처벌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꼭두각시' 감사위원회 벗어나야= 기업 내 감사위원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꼭두각시마냥 경영진이 선정한 감사인에 대해 사후 승인만 하고 있다.
이럴 경우 감사인 선임 관련 감사위원회의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감사인은 경영진과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감사인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요인 중 하나가 허울 뿐인 감사위원회라는 것이다.
김동원 안진회계밥인 상무는 "감사위원회가 감사품질을 기준으로 감사인 선임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감사위원회가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정책이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인 선임절차와 투입시간 적정성 평가 등 내부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외감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상무는 또 "감사인 선임 결정 시 감사보수 요인은 고려 요소에서 제외돼야 한다"며 "감사보수가 감사품질보다 중요한 고려요소로 작용한다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강화의 효과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치킨게임' 감사보수 덤핑, 규제 필요성 대두= 제한된 회계감사시장에서 감사인들의 출혈경쟁으로 감사보수마저 덤핑하는 사태가 불거지면서 감사보수 덤핑에 대한 감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셌다.
현재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감사를 수임하기 위한 회계법인 간 과당경쟁이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권수용 교수는 "수임을 위해 가격경쟁을 벌이고 덤핑을 일으키는 구조 하에서 감사인의 경제적 독립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며 "과당경쟁에 관계없이 감사인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제도는 감독 당국이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감사보수 규정을 제정해 감사보수가 범위 밖으로 나가면 금융당국이 감리를 실시하고, 규정을 위반한 기업과 감사인에 대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적정 감사수임료에 미치지 못하면 감사수임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회계법인 간 감사수임지침 등의 제도적 장치도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 외부감사에 대한 경영진 인식 개선 시급= 외부감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 기업의 낡은 인식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권수영 고려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외부감사를 부차적인 요소를 간주하는 기업 경영진의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긍극적으로 높은 품질의 감사서비스를 제공받고 적정 수준의 감사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이 감사보고서의 유용성을 높이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기업에 혜택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기업의 변화를 요구했다.
감사품질이 떨어져 자본시장에서 감사보고서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 기업들은 자금 조달 시 담보를 잡거나 추가 금리를 요구받을 수 있는데다, 주가마저 저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에 회계투명성 확보에 대한 기업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회계감사품질 제고를 위해 적정 감사시간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과 회계감사공영제, 감사보수공공부담제, 감사인력 효율적 활용을 위한 결산월 분산, 감사실패에 대한 감독기관의 역할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