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선호 업종이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 소비재 등으로 패턴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중국 기업의 인수를 내심 기대하며 M&A 시장에 내놓아진 구조조정 기업들은 매각이 장기화되거나 불발돼 관련 업계를 당혹케하고 있다.
12일 IB 업계에 따르면 동부하이텍은 최근 우선협상대상자인 아이에이 컨소시엄이 중국 투자자로부터 인수자금 조달에 실패해 지난 2014년 12월 30일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 당했다. 이후 매각을 담당하는 산업은행&노무라증권 컨소시엄 측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재매각 스케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디스플레이와 센서 등의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전문기업으로, 동부그룹의 차세대 수종사업으로 주목 받아 온 회사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과의 덩치 싸움에서 밀리며 경쟁력을 잃어 차입금이 650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동부하이텍은 현재 산업은행 등 채권단 주도 하에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부하이텍의 경우 중국 반도체 회사들이 인수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인수전 참여 의사를 밝힌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며 "재매각이 추진돼도 중국 기업의 인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말했다.
팬택의 경우 지난해 11월 1차 공개 매각이 시도됐으나 인수자군이 없어 유찰됐다. 매각 자문사인 삼정KPMG는 비공개 방식으로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번에도 결과를 낙관할 수 업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중국 기업을 비롯해 3개 기업이 팬택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 시장에 돌고 있으나 확인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팬택이 보유한 기술의 수준은 중국 휴대전화 회사들이 이미 상당 부분 따라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메이저 휴대폰 회사들의 팬택에 대한 인수 의지를 태핑해 본 결과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있는 편이나 보유 특허 등 기술에 대해서는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LG실트론을 비롯해 반도체 유통회사인 SAMT, 전진중공업, 파워넷 등 제조업체들의 매각도 지지부진해 채권 금융기관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업종과 휴대폰, 전기전자, 철강, 섬유산업과 같은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범용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의 경우 이미 중국 기업에 가격은 물론 품질 경쟁력마저 뒤쳐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소화가 안 되는 매물은 이제 중국 기업들에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M&A 시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감지해 엔터테인먼트회사에 대한 투자와 리조트 등 부동산, 패션, 화장품, 프랜차이즈 등의 소비재를 중국 투자자들에게 소개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아가방, 블루독, 밍크뮤 등 유아용품 제조업체들은 이미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
영화와 음악, 모바일, 웨어러블 등 중국이 뒤떨어진 산업에서 합병이 많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산대국에서 소비대국으로 변하면서 중국의 산업 트렌드가 바뀌었고, 결국 M&A 시장에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중국 M&A 트렌드의 변화는 앞으로 우리나라 산업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우리나라에 눈독 들이는 회사는 점점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보다 기술은 앞서나 자금이 부족한 회사들이 1순위 타깃이 될 전망이다. 제2의 NHN엔터테인먼트, 아모레퍼시픽, 엔씨소프트가 중국 왕서방들의 구매 희망 목록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A 회계법인 재무자본본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1년 사이 중국의 한국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변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재 중심의 딜 소싱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