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이후 최저치인 35%로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대통령의 신년회견 직후 실시한 조사(13~15일)에서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5%에 그친 반면 부정 평가는 55%에 달했다.
2030세대의 부정적 평가가 70%를 넘는 것은 그렇다 쳐도 50대에서 처음으로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더 높다는 것은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보수층에서조차 거부감을 불러오고 있다는 신호다.
이 같은 지지율 하락은 신년 기자회견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 김영한 전 민정수석 항명 파동 등에서 드러난 청와대 기강 해이와 국정 난맥상에 대해 사과하고 강도 높은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을 단행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등 현재의 진용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좋지 않았다'는 평가가 40%였던 반면 '좋았다'는 20%에 불과했고 '문고리 3인방'을 유임시킨 결정에 대해서도 '잘못한 일'(48%)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신년 회견 직후 '청와대 행정관이 문건 유출 사건의 배후로 김무성 대표를 지목했다'는 메모 파문까지 터지면서 국정의 중심을 잡아야 할 청와대가 온갖 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라는 단어를 63회나 언급하며 "대한민국이 난리났네 할 정도로 몰아가야 성장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공공·노동·교육·금융의 4대 구조개혁은 하나하나가 국민이 힘을 몰아줘도 될까 말까 한 난제들이다.
개혁을 밀고 나갈 추진동력(動力)을 얻기 위해 마련한 대통령의 신년 회견이 거꾸로 대통령의 지지율을 집권이후 최저치로 떨어뜨리는 황당한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부정 평가' 이유를 보면 경제·복지 등 특정 정책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불통'과 '불투명성'같은 대통령의 스타일과 관련된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 2년간 그토록 많은 주문과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박대통령이 '마이웨이'를 고집해온 데 따른 국민들의 실망감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체질을 바꾸기 위한 구조개혁에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만 갖고서는 안 된다. 치밀한 액션플랜이 있어야하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소통의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경제구조개혁 과정은 정치과정이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누군가의 양보가 불가피하다. 해고가 '살인'처럼 받아들여지고, 실직자들이 기댈 언덕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개혁은 처절한 전쟁이다.
대통령이 다양한 방식과 채널을 통해 국민과의 공감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국민들이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구조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 야당의 협조도 이끌어 내야하고, 경우에 따라 직(職)을 걸 각오까지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원칙과 소신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나 가치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배척하는 '확증편향'에 빠진 것 같은 인상마저 풍긴다.
각료 및 수석비서관 등과 머리를 맞대고 현안문제를 고민하는 브레인스토밍은 고사하고 이들로부터 대면보고를 받는 경우조차 드물다고 한다. 장관들과의 대면보고에 관한 기자 질문에 "대면보고 늘려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연단 뒤에 좌정한 장관들을 쳐다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답할 때는 딴 사람이 된 듯 어눌해지고, 평소와 달리 부적절하거나 격한 언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것 같았지만 평소 대화가 부족함을 은연중 드러낸 신년 회견이었다.
청와대와 지방의 경제 현장에서 많은 국민을 만난다고 하지만 여러 명을 대통령 앞에 모아 놓으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행사일 뿐이다. 영국의 대처총리는 다우닝가 총리 관저에서 회의가 길어지면 보좌관들을 위해 손수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청와대가 어느새 '궁정'이 되고, "승지들과 내시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재상들이 군주와 대면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어지러운 토론은 우아한 어전회의의 품격을 낮출 뿐"이라는 가시 돋친 비아냥도 그래서 쏟아진다.
개혁정책의 실행 역시 소통의 과정이다. 정책 담당자와 전문가 간의 소통에서부터 정책 소관부처와 관련부처 간, 정치권과 언론 및 대국민 소통과정을 거쳐서 마련되고 집행될 때 그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출범 이후 6차례 모두 43조원의 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고 지난주에는 신성장산업에 무려 10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용은 부처단위로 이미 발표한 것들을 취합해 재탕한 것 들이 대부분이고, 7차 투자 활성화 대책 역시 면세점 신설, 호텔객실 확충 등 상당수는 이미 업무보고 등을 통해 발표된 것들이다.
경기활성화에 조급증을 느낀 나머지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울 용산 주한미군기지 터 개발, 강남 삼성동 한전 터 개발,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 사업자 선정처럼 성과가 금방 날 수 있는 정책들을 연일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책에는 법 개정 사안이 8개나 포함돼있다.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정책 취지를 설명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가능하다.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있는 12개 '경제 살리기 법안'을 물론이고, 연금개혁, 수도권 덩어리규제 해제 등 주요 개혁과제들은 여당에게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나서 야당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다.
당․청간 파열음 또한 개혁에 큰 걸림돌이다.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는 정책이라 해도 여론의 지지나 사회적 호응을 얻지 못할 경우 집권당이 적극 협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대표가 '청와대발 악재'와 거리를 두느라 독자 민생행보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도와 달라'는 그의 호소가 얼마나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지도 의문이다.
임기 5년 단임의 대통령제 아래서 집권 3년차는 이른바 '역사와의 대화'에 빠져들고픈 유혹을 받는 시기다. 지금은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훗날 역사는 나를 평가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경우다. 이는 독선과 오만일 뿐이다.
위기돌파를 위한 대통령 특보단 신설 등 조직개편은 국정운영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옥상옥'이 되기 십상이다. 정치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소통하는 정치대통령으로 대통령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