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 영원한 국민가수
얼마 전 우리 곁에 또 한 사람의 가수가 떠났다. 가수는 가도 노래는 남는다는 말이 있다.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노래는 가슴속에 오래 남아있는 법이다. 하지만 최근엔 가수만 있고 노래는 없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수는 존재하지만, 혼을 다해 노래하는 생명력 있는 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요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젊은 가수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앞날이 창창한 신인으로서 얼핏 보아도 넘치는 열정이 느껴졌다. “훌륭한 가수가 되는 법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훌륭한 가수라…’ 옛 사람들은 ‘초년 출세는 패망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항상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음반시장을 보면 은근히 걱정이 되는 점이 있다. 너무 유행을 쫓고 인기를 추구하다보니 가수의 수명이 몰라보게 짧아졌다. 혼이 실린 노래보다 디지털 세대의 속도감 있는 취향을 따라가니 노래 자체의 생명력이 짧아질 수밖에.
훌륭한 가수란 팬들의 사랑을 오래 받을 수 있는 노래를 남긴 가수가 아닐까. 그리고 국민가수란 히트곡을 많이 보유한 가수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고인이 되신 황금심 여사는 언제 어디서 누가 요청해도 성심을 다해 열창하기로 유명했다. 혹자는 가수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분의 의지는 확고했다. 단 한명의 팬이라도 자신의 노래를 원한다면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래하겠다는 것.
내 주위에도 이런 분이 계시다. 돌아가신 아버님부터 내 손자까지 4대째 인연을 맺고 있는 1936년생의 원로가수 원희옥 여사다. 전설적인 여배우 전옥 여사와 양딸의 인연을 맺고, 8세에 악극단의 아역 배우이자 가수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6·25전쟁 당시에는 빨치산 토벌대를 위한 즉석 위문공연에 출연, 선친과 알게 되었다. 1998년 선친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소설 ‘애정산맥’을 원작으로 한 가극 ‘눈물의 여왕’에서 극중 배우로 원희옥 여사가 다시 출연했다.
그 후 원희옥 여사는 가극 ‘눈 나리는 밤’에서도 호연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구명시식자리라면 언제 어디서나 기꺼이 열창을 했다.
그런데 이분이 노래할 때는 혼자가 아니다. 악극시절 영가들이 함께 했다. 종종 황금심, 고복수 부부 영가를 비롯해 고인이 된 많은 대중예술 영가가 찾아왔던 것이다.
한번은 원희옥 여사의 양어머니인 전옥 영가가 나타나더니, ‘앞으로는 구명시식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다양한 대중가요와 음악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주기도 했다.
국민가수는 생전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우리 대중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열창과 진심어린 마음의 배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속에 자신의 노래 한 자락 넣고 떠나는 분들이야말로 진정 영원한 국민가수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