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 영혼의 눈 구도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숙명여대 박물관에서 혜원 신윤복(申潤福)의 그림 고사도(故事圖)를 전시하였다. 고사도는 제갈량이 남만왕 맹획을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 사로잡아 심복시켰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1811년 조선통신사의 사자관인 피종정이 신윤복에게 부탁해 선물용으로 일본에 가져간 그림으로 추정된다. 신미년 조선통신사는 역사상 마지막 정규통신사로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극에 달하고 있었을 무렵이다.
이 그림은 당시 조일(朝日) 관계를 제갈량과 맹획의 고사를 통해 묘사했다. 한때 일본 개인수집가가 이 그림을 경매가 내놓았다가 유찰되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것을 내가 197년 만에 구입하여 숙대 박물관에서 잠시 전시했다.
비단에 그린 이 그림은 섬세한 인물과 교자상의 표현과 함께 화사한 채색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동양화가 그렇지만 이 그림에서도 서양화와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즉 그리는 사람의 시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은 사람의 눈높이 그림이다. 서구 종교 성화(聖畵)에 등장하는 신이나 천사의 그림에서야 사람 눈높이 보다 올려 우러러 보는 앙각(仰角) 구도를 찾을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는 신을 올려다보는 그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원 김홍도의 서당도나 안견의 몽유도원도,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혜원 신윤복의 칠종칠금 고사도(故事圖)는 하나 같이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관점이다. 이런 구도는 육신의 눈이 본 구도가 아니라 영혼의 눈이 본 구도다.
인물과 주위 배경과의 관계를 바라보며 전체로부터 나를 파악하는 것을 중시한다. 즉 어떠한 입장(立場) 속에서의 인물인가, 커다란 우주 장(場) 속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서양 어린이들의 그림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그린 그림이 많다.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 그린다. 하지만 동양 아이들 그림은 다르다. 마치 비행기나 나무위의 새가 바라보고 그린 것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바라본 그림이 많다.
전체 속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우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서양인의 의식구조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만, 동양인은 주변과 나의 연관 속에서 바라본다. 이처럼 태어나면서 동서양의 시각차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눈높이 그림이 많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동양화는 전체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우리’란 ‘전체 속의 나’란 뜻이다. 전통적인 현무경, 천부경, 음양오행, 천간지지 등이 뜻하는 바도 역시 시간, 공간, 차원 우주 속의 ‘나’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계가 있다. ‘우리’의 범위는 한정이 없으니 개개인의 역량이나 관점, 업보에 따른 우주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비록 작은 그림 한 점에서도 보이는 세계 그 이상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 빠른 시일 내에 소장하고 있는 혜원 신윤복의 고사도를 국민에게 널리 전시할 예정이다.
그림을 통해 화가의 영혼적 시각을 느낄 수 있고 보는 사람의 영혼적 시각을 알 수 있으니 그림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양적 시각, 즉 영혼의 눈으로 본 구도로 다시 한 번 봐 주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