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못 타면 바보…범죄 의식 부재한 보험사기" = 보험사기는 전문사기꾼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만연한 것이 문제이다. 불필요한 보험 가입이 많아지면서 '교통사고가 나면 목덜미 붙잡고 쓰러지라'는 말도 흔히 쓰인다. 사진 : 금융감독원
"병원에서 입원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원하면 2주 정도 쉬어도 된다고 하더라. 어차피 보험사에서 입원비 내 주니까 이참에 쉬어보려고."
평범한 회사원 A씨는 시내 도로에서 뒤에 달려 오던 차가 자기 차를 들이박는 바람에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그는 이것이 '보험사기'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면 '일단 목덜미부터 붙잡고 쓰러져라'는 말을 일반인 사이에서도 쉽게 쓰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보험사기꾼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보험금 못 타면 바보 아니냐'며 범죄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그는 "도대체 불필요한 보험을 그렇게 많이 들어놓고 본전 생각을 하는 인식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모르겠다. 잘못됐다"고 말했다.
보험사기는 이제 단순한 금융 범죄를 넘어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병원과 가입자, 심지어 설계사까지 짜고 치는 보험사기에 한국 사회가 병들고 있다.
한해 발생하는 보험사기 추정 피해액은 2014년 조사 기준 4조7235억원. 이는 실제 적발해낸 금액의 8배 가량에 달한다. 이 때문에 보험 상품에 가입한 일반국민이 불필요하게 내야 하는 보험료는 1인당 1년에 9만6000원 정도이다.
이처럼 보험사기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가입자에 전가된다. 문제는 이를 중대한 범죄로 여기지 않는 인식이 팽배하고 보험사기에 따른 처벌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와 같이 가벼운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보험사기로 편취한 보험금이 5억원 이하이면 형법의 사기죄,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는데, 지난 17~18대 국회에서는 보험사기의 처벌조항이 따로 담긴 보험업법 개정이 추진다가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금감원은 자동으로 보험사기를 적출해내는 인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국세청과 협의해 사기꾼에게 세금추징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지만, 설계사 등의 전문가가 직접 나서 주도적으로 저지르는 범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보험사들은 나이롱환자(환자가 아닌데 환자인 척하는 사람들)를 찾아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이 일마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보험사들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불완전 판매 비중이 높고 민원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보험사의 현실을 볼 때 보험사의 어려움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A생명보험사의 한 임원은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들은 가입한 금융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환불을 요구하거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보험사 민원 건수는 금융권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상품의 특성상 장기 계약이 많고 중도 해지에 따른 손해가 커 블랙 컨슈머뿐 아니라 선량한 가입자의 피해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험 상품은 지능적 사기에 빈번하게 악용되는 것이다. 금융 당국과 경찰의 기획 조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적발된 보험 사기꾼은 4만54명에 달했다. 적발 금액은 2237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만에 각각 12.1%, 11.3%가 증가한 수치다.
보험 사기는 지난 2010년 상반기 1641억1200만원에서 2011년 같은 기간 2009억6400만원, 지난해 2236억970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보험사들은 보험 사기 때문에 해마다 손실이 늘고 있다고 울상이지만 사실 이 같은 비극을 초래한 것은 보험사들 스스로도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기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무뎌진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