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 한국 예술의 원동력
지인을 만나기 위해 서초동을 지나다가 예술의 전당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대표적인 오페라 하우스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은 수많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이다. 그러나 문화의 상징인 예술의 전당이 어떤 콘셉트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예술의 전당 건립 당시 총 본부장으로 계셨던 K씨는 영국 공보비서관 출신으로 나름대로 한국 문화에 대한 프라이드가 상당한 분이라 한다. 그런데 하루는 희한한 장면을 목격하고 놀랐다.
그 장면인 즉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서 한국의 무당에 관한 데이터들만 잔득 챙겨서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무당들의 굿판을 생생하게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들과 전국 각지에서 녹음한 무가(巫歌) 모음집, 그리고 무당들이 쓰는 각종 무구(巫具)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무당에 관한 것이 아닌 게 없었다.
이를 본 K씨는 상당히 당황해 하며 프랑스 관계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미신같은 것들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코드일 수 있습니까? 한국을 뭐로 보고 이런 저급한 문화의 산물들만 가져가려 하시다니요!”
그러나 이 말을 들은 프랑스 관계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한 번도 무당굿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신 모양이지요? 저희는 그곳에서 한국 예술의 원동력을 발견하고 대단히 감동 받았습니다”
한국의 무당을 '아트 메이커'로 본 프랑스 관계자들. 문화 강국의 국민답게 그들의 심미안(審美眼)은 우리의 그것을 한 차원 뛰어넘은 것이었다. 크게 자극을 받은 K씨는 예술의 전당 건립 당시 콘셉트를 한국의 무당에 맞췄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표적 무녀(巫女)인 김금화 씨는 세계적인 예술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를 돌며 한국의 굿이 지닌 종교적·예술적·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렸다. 춤과 노래가 곁들여진 굿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단순한 무속이 아닌 '종합예술'로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무속(巫俗)을 그리 곱게 보지 않는다.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고유 문화를 영혼의 한을 풀어주는 의식인 구명시식에 접목시켜왔다. 우리가 액션 영화나 멜로 영화를 좋아하듯 영혼도 재미와 감동이 있는 의식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살풀이와 고전 무용, 그리고 승무로 이어지는 춤. 한마디로 영혼을 위한 종합예술인 셈이다.
우리는 평소에 가까이 하면서도 우리 것을 잘 모를 때가 있다. 우리 문화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경향도 있다.
반대로 해외에서는 우리 것을 제대로 평가를 한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평가해야 할 차례다. 그 어떤 민족보다 문화를 사랑하는 영혼이 있기에 우리는 진정 문화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무속을 떠나서 문화를 문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인드. 그것이 21세기를 움직이는 아트 메이커, 한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