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돌출행동으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화를 못참고 비행기를 돌려버리고, 축구선수 루이스 수아레스는 경기 중 상대편의 어깨를 물어버리며, 팝스타 크리스 브라운은 별 것 아닌 일에 일반인을 폭행한다.
유명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화가 나 있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을 살해하고, 술에 취해 ‘묻지마’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헤어지자는 연인의 식구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잘못 없는 강아지를 아파트 아래로 던져버린다.
‘한의 민족’으로 불리던 한국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참지 않는다. 화부터 내고 보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최석현 경기개발연구원 사회경제센터 연구위원은 “한국인들의 문제제기 방식이 대화보다는 분노 표출로 변화하면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문제해결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화 분노 울화는 내 영역이 침범 당했거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등 불공평할 때 끓어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분노는 당연하며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정당한 분노는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에너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쌓이면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잠재돼 있던 화가 폭발한다. 이를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성장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일수록 노출되기 쉽다.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분노가 끓어오를 때 잘 해소하지 않으면 밖으로 표출되면서 폭력성이 커진다”며 “화가 안으로 향하면 자존감 저하, 무기력증, 우울증이 나타나고 심하게는 자살로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노조절장애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간헐적 폭발성 장애’다. 폭발적 행동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발작적으로 일어나며, 간헐적으로 반복된다. 공격충동 파괴적·충동적행동 폭력 등이 특징이다. 전체 인구에선 드물지만 남성에 흔하다. 증상은 주로 10~20대에 시작된다.
걸핏하면 분노해 주위 사람들까지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사람은 방치하면 안 된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일이 자기 생각대로 돼야 한다고 전제한다”며 “이런 사람들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신이 분노를 분출하는 동안 망가진 인간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할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근 정신과 의사들은 심리분석보다 행동의 변화를 꾀하도록 돕는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한다. 유 원장은 “분노에 의한 폭언 등 폭력적 행동은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며 “화가 나면 무조건 그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숫자를 센다든지, 인터넷을 하든지, 화장실을 다녀오는 등 화가 폭발하지 않도록 시간을 버는 게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헬스오 정희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