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선취수수료 떼고 연금저축보험 고객 방치
증권사, "연금저축보험 고객 잡아라" 마케팅 경쟁
가입자는 수익률도 좋지만 수수료 이중 부담에 '한숨'
연금저축의 계좌이동이 손쉬워지면서 초저금리로 수익률이 떨어진 보험계약에서 증권사 펀드로 갈아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증권사들이 1%대의 초저금리 시대에는 수익률 낮은 채권을 주로 편입하는 연금저축보험 보다 연금저축펀드의 수익률이 높다며 이동을 부추기는 적극적인 영업전략을 구사한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수익률의 유혹에 빠져 보험에서 펀드로 갈아탄 고객은 이미 보험사에 낸 선취수수료에 증권사에 새롭게 운용수수료까지 내야하는 이중부담을 안게돼 문제다. 여기에 펀드상품의 특성상 원금손실 가능성은 옵션이 된다.
NH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연금저축 계좌이동 간소화 이후 이미 보험사에서 목돈을 만든 연금저축보험 고객을 뺏어오기 위해 치열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증권사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선취수수료를 떼 실속을 챙긴 보험사들은 연금저축보험 가입자들의 이탈에도 뒷짐을 지고 있어 계좌이동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 연금저축 계좌이동 간소화에 연금저축보험 이탈 가속화
우리나라 연금저축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 100조원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보험사(연금저축보험) 가입 비중이 76%, 은행(연금저축신탁) 14.3%, 증권사(연금저축펀드) 6.5%순이다.
이처럼 연금저축보험의 비중이 높은 것은 설계사가 직접 집까지 찾아와 팔다 보니 다른 상품에 비해 가입하기 쉬웠던 영향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게다가 국채 등 안정적인 운용 전략을 쓰는 연금저축보험은 원금보장이 가능해 '연금'의 본질에 맞는다는 평가다.
하지만 1%대 저금리시대로 들어서면서 보험보다 수익률이 좋은 펀드로 갈아타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2~2012년) 연금저축보험의 연평균 수익률은 3.31%, 연금저축신탁은 3.7%였다. 반면 연금저축펀드는 7.05%로 두 상품의 수익률을 크게 웃돌았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에 연금 이동을 한 사람들이 전년 동기 대비 78%나 늘었다"며 "1% 초저금리 시대가 시작되면서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1% 수익률 차이에도 고객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매달 40만원씩 10년 동안 투자해 총 투자원금이 4800만원인 경우, 3% 수익이 나면 총 수익금이 789만원인데 반해, 9% 수익은 2940만원으로 3.7배 차이 나기 때문이다.
□ 증권사, 수천만원 쌓인 연금저축보험이 주타깃
최근 증권사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는 마케팅 타깃은, 오랫동안 묵혀서 수천만원의 자금이 쌓여 있는 연금들이다. 이에 증권사들은 연금저축보험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저마다의 차별화된 전략을 내세우면서 애쓰고 있다.
NH투자증권은 100세시대연금저축계좌, IRP 신규, 기존 가입 고객 및 계약 이전 고객을 대상으로 최대 100만원 상당 상품권을 제공하고, 미래에셋증권은 IRP 신규 가입, 계약 이전 또는 추가 납입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사은품 및 여행상품권을 주는 이벤트를 6월 30일까지 진행 중이다.
KDB대우증권과 대신증권은 신규 및 계약 이전 고객을 대상으로 연 3.5~3.75% 매칭 환매조건부(RP) 가입 기회를 RP '한도 소진 시'까지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고,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하나대투증권, 하이투자증권 등은 모바일 상품권 등을 제공한다. 삼성증권은 연금저축펀드 고객을 늘리기 위한 이벤트 라인업을 구상 중이다.
공공연한 이벤트 진행 외에 은밀하게 고객 뺏어오기를 진행하는 증권사도 있다. S증권 답십리점 직원은 "한 달 내 연금저축펀드 가입 고객을 50명 이상 유치하면 직원에게 금을 포상한다"고 귀띔했다. K증권사 직원은 "300만원 이상 연금저축펀드로 갈아타면 고객에게 10만원을 준다"고 말했다.
KDB대우증권 관계자는 "KDB대우증권이 집중적으로 공략한 개인연금 시장 관련 계좌는 작년 말 4107개에서 올해 3월 말 1만2179개로 300% 증가했다"고 말했다.
□ 보험사에 선취수수료 증권사엔 운용수수료 이중부담
문제는 연금저축보험에서 연금저축펀드로 갈아탈 경우, 이동 고객이 수수료 부문에서 손실을 본다는 점이다. 보험사에서 선취수수료를 떼인 후, 증권사에서 운용수수료를 또다시 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연금저축보험 고객에게 보험 유지기간을 미리 계산해 '월 납입액 기준'으로 4~8%를 선취한다. 때문에 연금저축보험 고객을 한 번 유치하면 수년간 따로 들어오는 소득이 없어도 보험사는 손해 볼 것이 없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보험사·기간별로 다르지만 연금저축보험은 유지비용, 관리비용, 계약체결비용(모집 수수료) 등을 선취한다"며 "가입 후 7년 이내 유지 고객은 월 보험료의 7% 중반, 8~10년 유지 시 약 6%, 이후에는 4%를 미리 뗀다"고 말했다.
연금저축보험 가입 시 계약을 해지 하지 않는다는 약정을 하면서 수수료를 미리 납부하는 방식이다. 더군다나 보험을 1~2년 안에 해약을 하면 공제 패널티 금액도 따로 붙는다.
최근 금융당국이 보험업계에 연금저축보험 수수료 인하 압박을 하면서 보험업계는 마케팅 주력 상품에서 연금저축보험을 제외시키는 분위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 가입 고객이 증권사 연금저축펀드에 새 둥지를 틀 경우 펀드 운용수수료 2%를 따로 납부해야 한다. 운용수수료는 '적립금 총액'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금액이 크면 클수록 떼이는 금액이 함께 늘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연금저축펀드는 보험과 달리 고위험·고소득 상품으로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다. 일각에선 노후 대비 자금을 운용해 손실이 날 수 있는데도 증권사들이 그동안 적립식펀드에서 거둔 수익률만 내세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최저보증이율 높은 연금저축보험은 유지가 이득
그렇다면 연금저축 가입자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가령 오래 전에 가입해서 최저보증이율(보험사가 시장금리 변동과 상관없이 지급을 보장하는 최저금리)이 4~6%로 높은 연금저축보험의 경우엔 갈아타면 밑지는 장사다.
2000년대 초반에 높은 확정금리로 가입한 연금저축은 이미 7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 해약해도 원금 손해가 없지만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소비자에겐 이득이다.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한 지 7년이 지났으면 이미 선취 개념의 수수료를 보험사에 다 낸 셈인데,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게 되면 적립액 전체에 대해 수수료를 떼일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또 생명보험사가 판매하는 연금저축보험은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종신(終身)형 연금이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가능하고, 가입 시점의 경험생명표가 적용된다.
윤치선 미래에셋 연구위원은 "경험생명표는 연금을 지급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예전 경험생명표가 적용되는 상품이라면 그만큼 현행 경험생명표로 가입하는 사람에 비해 두둑한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