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당시 한동네에 사는 고등학생들과 부모들의 애환을 그린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를 끌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는 뉴스를 놓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증권을 아는 친구가 찍어준 주식이 세 개 있는데 거기에 투자하면 손주들 외국유학도 보낼 수 있고 결혼자금도 마련해 줄 수 있다 카더라.” “그 똘똘한 주식이 삼성전자, 한미약품, 태평양화학 주식이다.”
한미약품. 종로 5가 옛 임성기약국의 주인약사 임성기 회장이 1973년 창업한 회사다. 임 회장은 제대로 된 글로벌 신약 개발이 꿈이라며 매출액의 15% 이상을 R&D에 들이부었다. 작년부터는 20%로 늘였다. 창사 이래 처음 적자를 봤던 2010년에도 852억원이 투입됐다. 2014년에는 영업이익 36억원의 38배에 달하는 1354억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이후 R&D에 투입된 돈이 무려 5288억원.
R&D가 실패해도 임 회장은 연구원들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격려했다. 결과는 대성공. 2015년 한미약품은 베링거잉겔하임, 사노피, 얀센, 릴리 등 세계적 제약회사들과 8조원대의 기술수출계약을 체결했다. 다른 회사들이 복제약 영업에 몰두할 때, 임 회장은 R&D를 통해 획득한 특허권의 라이센스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틀었다. 임 회장의 그런 용단이 제대로 먹혀 든 것이다. 진정 획기적 사건이다.
한미약품 주가는 작년 연초 대비 748%나 올라 임 회장은 주식부호 8위로 급부상했다.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자신의 한미사이언스(지주회사) 주식 90만주(1100억원 상당)를 임직원에 증여하기로 했다. 정말이지 통 큰 회장님이다.
한미약품 성공신화의 일등공신이 R&D에 과감하게 투자해 온 임 회장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 다음 공신은 13년간 R&D에 매진해온 한미약품의 연구원들. 그 다음을 꼽자면, 필자 개인적으로는 R&D에의 세제지원을 들고 싶다.
세법은 R&D비용을 연구·인력개발비로 부른다. 연구·인력개발비가 발생연도의 손금에 산입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R&D는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크다는 점에서 손금 산입만으로는 기업이 R&D투자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게 연구·인력개발비세액공제다. 이 제도 하에서는 당해 연도에 발생된 특정 신성장동력 연구개발비나 원천기술 연구개발비의 20%(중소기업 30%)가 법인세에서 공제된다. 그 외 일반연구개발비의 경우 직전연도분에 비해 증가하면 그 증가분의 40%(중소기업 50%)가 법인세에서 공제된다.
혹자는 R&D세액공제가 대기업만을 위한 제도라고 몰아붙인다. 대기업이 받은 R&D세액공제의 절대치만을 놓고 보면,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더 큰 혜택을 받는 것 같은 착시현상은 생긴다. 거기에 비난의 화살을 맞춘 것이나, 이는 훨씬 큰 R&D투자여력을 가진 대기업이 R&D에 더 많이 투자한 것의 결과일 따름이다. 그 점에서, 이런 비난은 하나도 모르고 둘도 모른다고 고백함에 다름 아니다.
한미약품이 지난 5년간 받은 세액공제혜택은 1000억원 남짓하다. 얼핏 보면 커 보이나, 앞으로 한미약품이 받을 특허사용료 8조원에서 정부가 거두어들일 법인세는 약1조원에 이른다. 거기에 이 특허사용료를 재원으로 한 배당금에 대한 소득세를 감안하면 그로 인한 세수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정부도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이래도 R&D혜택이 대기업에 편중됐다고 비난만 하고 말 것인가.
정부가 세수를 희생하면서까지 R&D세액공제를 허용함에는 정책목표가 있을 터. 기업의 대외경쟁력 제고와 성장잠재력 확충을 통한 미래 먹거리 마련이 바로 그것이다. 임 회장은 정부가 R&D세액공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정책목표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과감한 행보는 정부에게 세액공제액의 10배가 훨씬 넘는 세수를 안겨 줄 것이다. 임 회장이 대단한 애국자로 추앙 받아 마땅한 이유다.
“합법적으로 조세감면을 받고자 하는 행위는 정부가 그 조세감면을 통해 달성하려는 국가적 정책목표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그 점에서 이는 초(超)애국적 행위다.” 미국대학의 세법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