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건물(국세청사)은 자랑할 만한 역사가 없다. 1966년 개청 이래 50년 동안 총 여덟 차례나 청사이전을 하면서, 기록만이 남았을 뿐 옛 국세청사의 자취는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개청 초기 국세청사는 '임시'라는 꼬리표를 늘 달고다녔다.
업무연관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패션디자인학원의 건물에서 업무를 하거나, 바글바글한 규모의 인력이 공간부족에 시달리는 서러움을 견뎌야 하기도 했다. 말이 좋아 독립기관이지 한 울타리 안에서 상급기관의 눈치를 보며 불만을 삭히는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적게는 200명에서 많게는 2만여명 직원들의 희로애락이 깃든 옛 국세청사는 통째로 사라지거나 리모델링이 됐으나, 국세행정의 기반을 닦았던 과정 등 이들이 만들어낸 국세청의 역사는 남아 있다.
국세행정의 첫 역사를 썼던 서대문 청사를 시작으로 무려 31년간 머물렀던 수송동 청사, 개청 이래로 처음 서울을 떠나 세종시로 보금자리를 옮긴 나성동 청사까지 국세청사의 변화 과정을 살펴봤다.
◆…국세청의 첫 보금자리였던 서대문 국세청사. 국세청은 1996년 3월부터 12월까지 이곳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이 건물은 노라노 양재학원 건물로, 패션디자이너 지망생들이 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사진= 국세청 제공)
국세청 첫 보금자리는 어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2가 185-17번지. 1966년 3월3일 오후 3시 이곳에서 '700억원 세금을 징수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상같은 지시를 받은 국세청의 개청식이 열렸다.
신규 세원의 발굴과 탈루세금 포착이라는 천명을 안고 출범한 국세청의 첫 보금자리는 임차청사였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이 국세청 신설을 발표하고 나서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진 개청식이었기 때문에 새 청사를 짓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에 재무부(현 기획재정부)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가의 '노라노 양재학원' 건물에 임시청사를 부랴부랴 마련했다. 노라노 양재학원은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이 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 학원을 세운 노라노씨(본명 노명자) 역시 패션디자이너이기도 했다.
당시 이 건물에 상주했던 국세청 직원은 200여명. 현재 국세청 인력의 1/100 수준인 이 인력들은 국세청 개청의 계기가 됐던 조세행정특별조사반의 조사활동을 계승하고 탈세방지와 음성세원 포착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받들어 세무조사 기능까지 수행했다.
◆…국세청은 관훈동 청사(사진)에서 1967년 1월부터 1970년 1월까지 3년여 간 자리했다. 당시 관훈동 청사에서는 세금으로 근대화대업을 밀어주자는 대형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사진=국세청 제공)
"근대화대업, 세금으로 밀어주자"
국세청은 1967년이 되자 관훈동 청사로 옮겼다.
관훈동 청사는 서울 안국동 사거리 동국여대 건물에 자리했다. 서대문구 청사(6층)보다는 1개층이 낮았다.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정부부처를 한 곳에 모아 업무를 추진했는데, 국세청 역시 이러한 정책기조에 따라 관훈동 청사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당시 관훈동 청사에는 기관명이 적힌 간판이 아닌 '세금으로 밀어주자, 근대화대업' 문구의 대형 간판이 걸렸다. 한창 근대화를 추진하던 당시, '밑천'이었던 세수확보에 정부가 얼마나 역점을 두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세행정과는 별개로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다.
국세청은 관훈동 청사에서 3년 여간 머물렀는데, 광화문 청사로 옮긴 후 해당 건물을 병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사를 하던 도중 콘크리트 슬라브가 떨어져 초대 상공부 광무국장인 유복렬씨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3명의 부상자를 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국세청은 1970년 종로 세종로에 위치한 정부종합청사로 옮겼다. 국세청은 공간 협소 등의 이유로 층을 옮겨다니며 이사를 하는 '더부살이'의 서러움을 겪어야만 했다. (사진=국세청 제공)
'셋방살이'는 서러워
1970년 정부서울청사가 완공되면서 국세청도 관훈동 청사를 떠났다. 정부서울청사는 지상 19층(지하 3층)에 대지면적 4718평 규모가 말해주듯 당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건물이었다. 정부서울청사라는 이름보다는 광화문에 위치한 탓에 광화문 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광화문 청사에는 국세청을 비롯해 내무부, 법무부, 문교부, 농림부 등 중앙 부처들이 대거 입주했는데, 국세청은 입주 직후 3층을 사용했다. 상공부는 4층과 5층, 법무부는 6층, 내무부는 14층에 자리했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납세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세원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국세청 정원도 꾸준히 늘었다. 이로 인해 국세청 직원들은 '공간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불편을 호소했다. 이 같은 국세청의 업무애로 사항이 받아들여져 1975년 7층과 8층으로 이전해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국세청은 국회가 여의도로 이전하면서 남은 건물이었던 국회 제3,4별관을 임시 국세청사로 사용했다. (사진=국세청 제공)
또 임시청사 신세라니…
광화문 청사에서 나온 국세청은 또 다시 임시청사에서 신세를 졌다.
국세청의 다음 보금자리는 태평로 청사로, 국회가 여의도로 이사를 가면서 남은 건물인 국회 제3·4별관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국세청은 이 건물을 국세청사로 사용하기로 확정하고 내부수리에 들어갔는데, 이곳 역시 광화문 청사와 마찬가지로 협소한 공간 탓에 직원들이 업무불편을 호소했다.
국세청은 내부 불만소리가 높아지자 단독청사를 마련하기 위해 눈을 돌렸다.
이에 현재 국세청 전산센터가 자리한 양평동 신축청사로 이전할 계획 세운 뒤, 약 1년여 간 태평로 청사의 협소함을 견뎌냈다.
◆…국세청이 1977년 2월부터 1983년 8월까지 머물렀던 양평동 청사. 당시 국세청은 교통 환경이 불편하다는 직원들의 불만에 따라 출퇴근 버스를 운용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사진=국세청 제공)
"출퇴근 불편해도 이사 가기 싫어요"
국세청은 지금의 국세청 전산센터가 자리한 양평동 청사로 이전했다.
국세청은 양평동 청사에서 1977년부터 1983년까지 6년여 동안 머물렀다.
양평동 청사는 한강세무서와 영등포세무서가 있던 자리였는데 지금과는 달리 교통 환경이 매우 불편했다. 이에 국세청은 직원들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출퇴근 시간대에 통근버스 5대를 운용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직원들은 불만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1983년 청사 이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전 후 상급기관인 재무부와 건물을 함께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청사를 떠나지 않겠다는 직원들이 많았다는 후문.
본청이 1983년 양평동 청사를 떠난 이후 서울지방국세청이 입주해 청사로 썼다.
◆…31년 수송동 시대를 알렸던 구청사. 당시 수송동 청사에는 재무부 세제국, 국세심판소 등도 입주했다. (사진=국세청 제공)
'수송동 시대' 열리다
1983년 9월 이후 31년 동안 내리 이어질 '수송동 시대'가 열렸다.
국세청은 서울 종로구 수송동 104번지에 위치한 건물로 청사를 이전했다. 수송동 청사에는 재무부 세제국과 국세심판소(현 조세심판원) 등도 입주해 있었다.
당시 재무부에서는 공간 부족의 이유로 세제국만 따로 떼어놨는데, 국세청 직원들은 세제국 눈치를 봐야한다는 불만을 수시로 토해냈던 것으로 전해져 있다.
수송동 청사는 10층 높이로 '합동빌딩'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다. 16년 동안 무리 없이 건물을 사용했으나, 노후화 된 건물로 인해 배관시설물이 뒤틀리는 등 안전상 문제점이 노출돼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으면서 지금은 기록상 구청사라는 이름으로 남게 됐다.
◆…국세청은 수송동 구청사를 허물고 새청사를 짓기 전까지 종로타워에서 3년여 간 머물렀다. 이 건물은 여전히 서울 종로의 랜드마크로 남아 있다. (사진=국세청 제공)
종로타워에 입주한 국세청, 특별한 이유가 있다?
수송동 구청사를 허물고 신청사를 짓기 전까지 국세청은 서울 종각역에 위치한 종로타워에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3년여 간을 머물렀다.
종로타워는 옛 화신백화점이 있던 자리였는데, 당시 건물은 화재를 비롯해 영업실적 저조 등을 겪으면서 1987년 화신백화점의 폐업과 함께 철거됐다. 이에 삼성건설은 1995년 이 자리에 지상 33층(지하 2층)의 건물을 새로 짓게 되고, 현재까지 종로타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종로타워의 특징은 상층부의 건물 중앙이 뻥 뚫려있는 것인데 이것은 '공군 작전용 공중통로'로 당시 청와대의 요청에 의해 이렇게 지어졌다고 한다.
국세청이 이곳으로 입주하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다.
사실 종로타워는 고층이면서 외관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 자칫 '호화청사'로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었다. 당시 국세청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이전에 난색을 표했으나, 삼성이 임대료를 대폭 깎아주겠다고 사정을 하자 마지못해 입주를 결정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특히 이 자리는 기(氣)가 센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그 기를 눌러줄 만한, 힘 있는 기관이 국세청이기 때문에 삼성이 국세청을 입주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다.
국세청은 종로타워 건물에서 14개 층을 사용했으며, 임차료로 월 7억4000만원을 냈다.
◆…국세청은 2002년 10월 수송동 신청사에 입주했다. 당시 수송동 신청사는 호화청사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국세청은 신청사에서 12년간 자리했다. (사진=국세청 제공)
수송동 신청사, 호화청사 논란 왜?
국세청은 2002년 10월 수송동 신청사에 입주해 12년 동안 머물렀다. 구청사에서 종로타워로 잠깐 이전하긴 했으나, 무려 31년 간 수송동에 있었던 셈이다. 수송동 신청사가 지어지면서 세금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세박물관도 개관했다.
당시 수송동 국세청사는 외벽이 화강암으로 지어진 탓에 '호화청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사실 그 시절 국세청사 건물 주위에 고층 건물이 없었던 터라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신청사 건물에 대한 언론보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후문까지 들리고 있다.
특히 수송동 국세청사는 직원들의 요구가 가장 많이 반영됐다고 한다.
종로타워에서 근무하던 시절 외관이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직원들은 추위와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됐을 뿐만 아니라 창문도 열리지 않아 환기조차 되지 않았다고. 더욱이 종로타워 내부에 카펫이 항상 깔려 있었는데, 카펫 때문에 먼지가 많이 날려 직원들이 늘 기침과 감기에 시달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직원들은 신청사에는 카펫을 절대 까지 말고, 외관은 전면 유리로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같은 직원들의 요구에 신청사는 창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국세청은 48년 간 서울 생활을 마무리 하고 세종시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세종시 국세청사를 외형을 비롯해 편의시설면에서 수송동 청사보다 한층 더 발전했으나, 직원들은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국세청 제공)
단독청사에서 다시 셋방살이로?
국세청은 31년 간의 수송동 시대를 마감하고 세종시 나성동에 위치한 정부세종2청사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세종시 국세청사는 대지면적 8332평 연면적 1만4758평으로 지하 2층~지상 12층(지하1, 2층 주차장, 지상 1층 식당)으로 지어졌다. 외관은 1·2단계 이전부처들과는 달리 전면 유리로 되어 있지 않다. 직원들은 종로타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현재의 나성동 국세청사 외관을 무척 반겼다는 후문.
세종시 국세청사는 화려한 외형과 더불어 각종 편의시설을 자랑하지만, 입주 당시만 해도 직원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수송동 청사보다 1인당 사용 면적이 더 좁아졌을 뿐만 아니라 사무실 배치나 파티션 위치 등을 모두 일일이 세종청사관리소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승사자'를 닮은 조형물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국세청사 앞에 '흥겨운 우리가락'이라는 뜻의 조형물이 있었는데, 머리에 쓴 삿갓과 눈동자 없는 눈 등 때문에 마치 저승사자를 연상시킨다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많았다. 논란이 지속되자 국세청은 해당 조형물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