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의 좌우명 “必死則生, 必生則死”는 2천년전의 병법에서부터 나오는데 만고의 진리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현장이 아닌 일상생활로 풀이하면 “노력하면 잘 살고 게으르면 못 산다”는 뜻이다.
이것을 OECD 국가 중 꼴찌인 한국의 회계투명성에 대입해보면 “감사인 지정하면 회계도둑 잘 막고, 자유선임하면 회계사기 터진다”이다. 감사인지정제가 자유선임제로 변경된 지난 35년간 99%의 적정의견속에서 분식회계사기와 거액공익피해가 연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선진국에서는 감사인의 자유선임제도가 잘 가동되는데 왜 한국·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는 잘 안될까? 미국도 엔론사태때 앤더슨회계법인이 문을 닫았지만 회계부정이 한국만큼 빈발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IMF시대에 대우그룹과 기아차를 포함해 30대 재벌 중 16개가 무너졌고, 5대 시중은행의 명칭이 모두 바뀌었다. 최근에도 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대우건설·모뉴엘·포휴먼·한솔신텍·동양그룹·저축은행 등 내노라하는 기업에서 수천억원 이상 수조원의 분식회계가 발생해 수십만명이 투자손실을 입었고 천문학적 국민혈세가 투입되었다.
서구식 자유선임제가 한국기업에게는 왜 안성맞춤이 아닐까? 지극히 사견으로 일설해 본다.
첫째, 한국기업은 대부분 소유자·창업자 및 단일가족승계자가 직접 경영한다. 가까운 사람과 동업하지 말라는 옛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도 있다. 한국사람은 저돌적이어서 일단 자기 단독으로 사업을 벌인다. 그리고 돈이 부족하면 부모·친지·친구 돈을 빌리고, 은행에 가서 운영자금을 빌린다.
부채의 레버리지(지렛대효과)로 성공하면 빚을 갚고 단독경영자가 된다. 누구랑 공동경영하고 이익나누기를 불편해 한다. 기업소유자가 직접 경영하므로 외부감사인도 필요없다.
서구인들은 사업아이디어를 주변에 알려 지분투자자 또는 합작사업가를 영입한다. 투자자들이 실제 업무집행근무는 안해도 부분지분권자로서 외부공동경영을 하며 이익배분을 지속한다. 애초부터 지분소유자와 경영자가 분리된다. 외부의 지분소유자들은 내부경영자를 감시하기 위해 독립된 외부감사인이 절실하다. 그래서 높은 값을 주고도 외부감사인을 즐겨 활용한다.
둘째, 한국인은 정이 많고 정에 약하다. 절대 장점이지만 사업에는 단점이다. 잘 숨겨주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온정주의도 강하다. 남에게 바른 말을 잘 못하고 고자질 하지 못한다. 특히 불특정다수성의 공익적 문제에 대한 고발정신이 약한 편이다. 조직내 고발자는 배신자로 매도되고 집단따돌림을 당한다.
셋째, 한국 상관행에서는 많은 일들이 혈연·지연·학연 등 연고주의로 결정된다. 전직예우나 전관예우 등도 공공연하다. 아직도 낙하산 인사의 하마평이 신문지상에 공공연하게 보도된다. 소유경영자가 아닌 감사위원회(사내감사＋사외이사 등)도 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으므로 외부감사인을 실제로 독립적으로 선임하지 않는다.
기업오너와 임명권자의 눈치를 본다. 회의때마다 제대로 오지도 않고 거수기 노릇을 거리낌없이 한다. 대우조선해양에도 20명 이상의 사외이사들이 있었으나 반대표 없이 고액연봉만 받아갔다고 한다.
넷째, 서열과 질서를 중시한다. 아직도 대기업 신입직원들은 팀장보다 먼저 퇴근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이를 중시하고 장유유서의 유교문화가 신세대 젊은이에게도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대기업과 하청납품회사 등의 갑을관계의 명령과 복종폐습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갑(기업)이 스스로 잘 알고 있는 회계숫자와 재무제표를 외부검증하는 외부감사인은 한국에서 가장 약한 을이다.
다섯째, 한국은 아직도 단일민족이다. 서구는 수백민족이 섞여 살고 미국땅·유럽땅은 한국의 100배가 넘는다. 서양인은 20명을 만나도 성씨가 다 다르다. 한국은 박·김·이씨가 50%를 넘는다. 집성촌도 있고 한국인은 한다리 건너면 모두 친구·친지·친척으로 연결된다. 그러니 외부감사에만 특유한 특성인 감시·조사·경고·투명공개의 개념을 기피한다. 따라서 자유선임제는 실패하게 되어있다.
여섯째, 우리나라는 아직도 중후장대(重厚張大)문화다. 자동차·조선·철강·화학·건설·의류·부동산·식품 등은 무게와 부피가 되니까 가격을 쳐준다. 추석선물내용량의 5배가 곧장 쓰레기가 되는 포장재이다. 경박단소(輕薄短小)한 무형의 서비스와 지식에는 인색한 편이다. 흥망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판단을 알려주어도 밥 한끼 정도이다.
감사보고서는 단 한 장이며 기업의 재무제표도 딱 한 장으로 요약할수록 한눈에 더 잘 들어온다. 기업고유정보는 소유경영자와 측근 실무자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외부경쟁자와 불특정다수인에게 자기정보를 무가로 제공하는 외부감사업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곱째, 회계감사보고서의 실질이용자는 감사선임발주자인 기업자신이 아니고 외부의 불특정다수 국민과 국가이다. 기업은 자기경영상태와 실적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재무제표와 주석사항도 모두 스스로 작성할 수 있으니 외부감사는 거추장스럽다고 느낀다.
가족기업이니 재무제표를 타인 누구에게 보여줄 이유도 없고 외감법률로 강제되니까 마지못해 감사받는다. 이건 우리만의 특유한 상황은 아니지만 적수공권 창업하여 업무장악력이 강한 한국의 경영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미국·유럽의 외감보수가 한국의 10배 이상인 것은 외감에 대한 자발선호성(미국)과 강제기피성(한국)의 태도차이 때문이다.
여덟째, 아직도 신용거래가 약하다. 기업대출은 대부분 부동산·기계 등 물적담보대출과 연대지급보증에 의존한다. 그나마 외상매출금 유가증권 등 동산담보 대출이면 대만족이다. 재무제표상의 자산·부채금액은 참고금액에 불과하고 외부감사보고서는 기타 첨부서류이다. 외부감사보고서 내용대로 신용대출해주고 문제되면 손해배상책임을 물으면 될텐데 아직 멀었다.
따라서 감사인자유선임제는 집정관과 감사관과 법무관이 3자 견제균형을 이루며 2천년전에 공화정을 실시한 로마제국과 소유·경영이 분리된 유럽·영국·미국기업의 현실에는 잘 부합된다. 그러나 진정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뿌리내린지 아직 50년이 안되고 소유·경영이 단일한 한국기업에게는 35년전 제도라 해도 감사인지정제가 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