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인지정제가 독립성 살려
물·공기가 깨끗해야 하듯이 회계도 투명하려면 재무제표 작성주체인 기업과 외부감사인과 투명회계의 이용자 등 경제주체간 삼각체제가 상호견제와 균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투명회계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면 감시기구·감독당국의 많은 규제와 처벌도 불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금융경쟁력이 저평가되고 회계투명성이 61개국 중 61위 정도로 낮은 것은 투명회계의 자율순환제도가 아니라 분식회계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감사인 선임권을 전적으로 준 일방통행제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 될수록 모든 조직은 윤리와 양심·도덕심보다는 거래와 금융과 자본 등 돈의 들고나감으로 운영된다. 이런 돈의 흐름을 개별적이고 총괄적으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회계이고 특정영리·비영리조직에 돈을 내고 받는 이해관계자가 많아질수록 회계결과와 재무제표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재무제표작성자는 거래당사자로서 언제나 주관적이고 자기위주의 분식회계 유혹에 빠지기 쉬우므로 완전히 독립된 감사인의 외부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돈의 흐름에 대한 기부자 투명성이 더욱 중요한 비영리조직일수록 독립된 외부감사는 절대 중요하다.
그런데 현행 외감법이 회계투명성을 위한 특별법임에도 불구하고 재무제표작성주체인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임의로 선임하고 감사보수도 최저가 수준에서 임의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원래 감사는 감시와 감독 또는 파수꾼의 업무이므로 피감대상을 잘 조망할 수 있도록 더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면서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외부감사인은 피감기업의 발치아래 땅밑 암흑에서 위를 쳐다보며 감사하는 꼴이다.
이렇게 낮은 곳에서 상대방의 분식회계를 어떻게 탐지할 수 있을까? 또한 외부감사인선임권(창)과 가격권(방패) 및 재무자료 작성권한(칼)도 기업이 갖고 있는데 회계관련 칼과 창과 방패를 모두 피감회사가 갖고 있는 격이다. 외부감사인은 아무런 방어무기없이 벌거숭이 알몸으로 감사하는 격이다. 기업이 혈연·지연·학연·전직 및 전관예우 등을 감안해 선임하니 독립성도 지키기 어렵다.
재무제표의 적정성과 회계투명성 및 외부감사의 품질은 대부분 독립성이 좌우한다. 분식회계는 아무리 은닉해도 어느정도 비정상적인 모습을 갖는다. 인체에 비유하면 머리나 코가 둘이거나 몸통의 좌우비대칭이 심하거나 팔다리가 하나씩 더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격이다.
분식회계 증거를 꽁꽁 숨겨놓으면서 확실한 반대 증거를 주지 않을 뿐이다. 현장감사를 몇일하면 분식회계의 경우 확증은 없어도 심증이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상황을 있는 그대로 감사보고서에 기재하고 감사의견에 밝힌다면 외부회계감사는 절대로 위험한 업무가 아니고 공익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외부감사인은 올해의 감사보수도 받아야 하고 내년의 감사계약도 연장해야 한다. 감사계약금도 제때 받아야 살아갈 수 있으니 문제점을 감지하고도 직간접 확증이 없다면 못 본 것이 되고 적정의견을 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적정의견이 아니면 일을 끝내도 잔금은 못 받는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자유선임계약에서 적정의견은 99%에 가깝다. 어떻게 기업의 1년간 전임직원의 회계기록이 외부의 수많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의 시각으로 보아도 대다수가 100점에 가까운 99%가 될 수 있을까?
반면에 금융당국 지정에 따라 외부감사 받는 경우의 적정의견은 90% 아래에 머문다. 그나마 지정감사기업이 작성한 재무제표에 대해 외부지정감사인이 현장감사후 제시하는 손실처리·자산감액·부외부채반영·우발채무추가와 주석사항기재 등의 수정사항과 지적내용을 대부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연구는 지정감사받은 기업의 회계투명성이 높아졌음을 검증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1년 단위로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데 피감회사의 임의적 선택권이 없고 회계법인 차원에서도 다음연도 감사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 어차피 1년 단위로 쌍방이 교체되므로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이 대폭 향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회계감사의 품질은 회계법인의 규모·명성·설립년도·담당회계사의 경험·경력, 국제적 브랜드 보다 회계감사인의 독립성 여부가 가장 큰 영향요소이다.
외부감사의 자유선임계약은 기업경영자에게는 편하지만 외부감사인은 독립성이 약해진다. 따라서 외부의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투자자가 모두 불안해진다. 다수의 투자자가 공익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면 이것이 규제이다.
반면 지정감사계약은 기업실무자는 불편하지만 외부감사인은 독립성이 강해지고 외부이해관계자와 투자자·채권자는 안전해진다. 다수의 공익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반규제이고 자율인 것이다.
따라서 규제와 반규제는 기업입장에서 볼 것이 아니다. 기업 입장보다는 외부이해관계자와 투자자·채권자입장 등에서 거꾸로 보면 공익에 불안을 주는 자유선임계약은 규제이다. 반면에 다수 이해관계자의 불안과 불편을 제거하는 지정감사계약은 오히려 반규제인 것이다. 그래서 상장법인에 국한해서 1년 등 당분간만이라도 감사인지정제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기업이 극렬반대한다면 이것이 이상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