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업계 전체가 과당경쟁으로 치열한 밥 그룻 지키기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실무능력뿐 아니라 세무사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통하는 영업기반까지 확보한 경쟁자의 출현이다. 때문에 '기존 세무사들이 벌벌 떨고 있다'는 말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세무사 자격 취득에 나서고 있는 증권맨들이 주인공이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은 온라인 거래 중심으로 개편된 여파로 증권사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는 상황이다. 이어진 구조조정으로 인해 짐을 싸는 증권맨들이 대폭 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3년 말 3만6000명 수준이던 증권사 임직원수는 2016년 (3월말 기준) 3만3000명까지 줄었다.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초대형 IB(투자은행)' 출범을 위한 증권사간 인수합병도 이 같은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다. 비단 증권사뿐만 아니라 상당수 직장들이 희망퇴직이란 명목아래 인건비 줄이기에 나섰는가 하면 그 대상도 30대까지 내려왔다.
그동안 높은 연봉을 통해 남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았던 기성 증권맨들이 어려운 업계 현실의 자구책으로 인고의 노력 끝에 세무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 출신인 한 세무사(55)는 "증권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면서 고액자산가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절세'인 것을 몸으로 느끼고 5년전 세무사 시험을 준비, 지난해 합격했다"며 "아직도 주변에 퇴직을 앞 둔 동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세무사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방편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여의도 증권사 임원 출신인 한 세무사(56)는 "자산가들의 경우 자산을 불리는 것만큼 세금 문제에도 정말 관심이 많다"며 "증권사를 떠난 후에도 오랜 기간 고객과 쌓아 놓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무사가 가장 좋은 직업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초대형 금융센터를 앞세워 고액 자산관리 고객을 붙잡기 위한 증권사들의 치열한 경쟁도 젊은 증권맨들을 중심으로 세무사 준비에 매력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기존 세무사를 채용해 고객들의 자산관리 상담을 해왔지만 젊은 증권맨들이 실무능력을 겸비한 세무사가 된다면 직장 내에서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여의도 소재 한 증권사의 신규 금융상품 기획부서에서 일하다가 세무사 자격 취득에 성공한 한 증권맨(35)은 "세무사 취득 후 복합세무컨설팅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시험 준비를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증권맨출신 세무사로 직장 내에서 절세금융상품과 질 높은 세무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록 당장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지만 정년 걱정을 덜기 위해 직장에 적을 둔 상태에서 미리부터 세무사 시험 준비에 나서고 있는 증권맨도 크게 느는 추세다. 이들은 더 이상 직장이 자신을 책임져 주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해 마이웨이 선언을 위한 준비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의도 증권사의 과장으로 재직중인 박모씨(38)는 요즘 세무사 시험 준비에 바쁘다. 올해로 직장생활 8년차인 박씨는 주변의 선배나 동료들이 직장을 하나둘씩 떠나는 모습에 회의감을 느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세무사 준비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앞으로 3년 정도 더 직장에 다닐 생각을 하고 있는 그는 현재 퇴근 후 3~4시간, 주말에는 주말 종합반을 다니며 3년 후 세무사 합격을 꿈꾸고 있다.
박 과장은 "월급쟁이란 불안정한 지위를 벗어나기 위해 세무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며 "현재 모든 업무는 최대한 업무시간 내에 끝내고 있고 부서회식에도 되도록 참여하지 않는 방법으로 퇴근 후 공부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명 욕하는 직장상사나 동료가 있을 수 있겠지만 세무사 합격에 인생 전체를 걸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비난과 따가운 시선은 감내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기존 세무사들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안 그래도 수십 년째 그대로인 세무기장료와 수요를 넘어서는 신규 세무사 공급증가로 어려운 업계 현실 속에서 경쟁력이 뛰어난 세무사들이 더 늘어나는 것을 반기는 이들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세무사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고객인 고액 자산가의 일거리를 가져갈 수 있는 이들의 출현이란 지적이다.
개업 10년차인 한 세무사는 "증권사 출신 세무사들은 각종 절세 금융상품이나 자산관리 실무경험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자산가 인맥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세무사로서 기존 일반 세무사들이 가지지 못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