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다 바꾸자" =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관세사 보수료 개선 방안 토론회' 모습. 이날 토론회에서는 패널, 청중 가릴 것 없이 관세사 업계가 매우 힘든 상황에 처했다는 목소리를 냈으며 바닥까지 추락한 현 관세사 보수료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터져나왔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을 가득 메운 150여명의 관세사들이 "이대로는 정말 못살겠다"며 절규를 토해냈다. 과당경쟁과 기업들의 수수료 후려치기로 인해 사무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인건비마저 뽑아내기 힘든 현 관세사 시장 상황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들을 쏟아낸 것이다.
지난 12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 한국관세사회(회장 안치성)가 주관하고 바른정당 이종구 의원, 더불어민주당 윤호중·박광온 의원 공동주최로 '관세사 보수료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발제는 김두형 경희대 교수가 '관세사 보수체계의 합리적 제도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진행했고, 사회는 김재식 서원대 교수가 맡았다. 토론 패널로는 이광우 관세청 통관기획과 서기관, 정임표 제일관세 대표관세사, 왕준영 대한상공회의소 연구원, 최준호 백석대 교수, 추창근 브릿지경제 주필(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이 참여했다.
"관세사 적정 보수료 보장해야"…시장개척, 자구노력도 필요
발제에 나선 김두형 교수는 기업들이 관세사 보수료 최저가 입찰로 실제 서비스 용역 제공에 소요되는 경비보다 낮은 수준에서 보수가 결정되고 있다며, 보수의 표준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최저가 입찰로 실제 경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보수가 결정되고 있는 상황이며 관세사들은 추가적 서비스로 원산지증명서 대리발급, FTA컨설팅이나 원산지 검증조사 같은 직무의 무상 제공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1999년 정부의 전문자격사 보수의 자율화조치에 따라 관세사 보수도 시장경쟁 체제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데, 보수기준을 정해놓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 관세행정의 건전성 확보 및 화주(기업)의 권익보호 차원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관세사가 업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발생되는 관세 등 세금 탈루, 부실 신고로 인한 관세행정의 낭비, 관세사의 부실한 직무수행으로 인해 입는 화주의 손해 총액과 화주가 부담하는 추가 비용을 비교해 이에 따른 적정한 보수의 표준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정임표 관세사.
패널로 나선 정임표 관세사는 인건비도 안나오는 낮은 보수료 때문에 자신의 관세사무소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는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정 관세사는 "현업 관세사로서 우리 관세사 업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다"라며 "관세사도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에 사무실이 유지되려면 비용보다 수익이 커야 한다. 관세사가 무너지는 것은 비용보다 수익이 작아져서 그렇다"고 말했다.
정 관세사는 "건당 최저 기본료 1만2000원을 받고 작성해주는 수출입신고서는 단순히 타이핑만 치는 것이 아니다"며 "내 고객 중에도 대기업이 2군데 있는데 그 두 곳이 최저가입찰을 하자고 하면 사무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관세사 보수료를 법률로 보장하도록 국회에 요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광우 관세청 서기관은 "10여년 전 관세청에 들어왔을 때는 매년 신문에서 발표되는 전문자격사 랭크에서 관세사 수입이 항상 상위권에 있었다"며 "나중에 퇴직해 관세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는 착각이었다"고 전했다.
이 서기관은 "관세사의 보수체계를 합리화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최저보수표가 있다해도 관세사가 기업에게 리베이트 형태로 일정 금액을 돌려주는 등의 문제는 있을 수 있다"며 "관세청도 관세사회 및 업계 현장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보수료 개선을 위한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전했다.
최준호 교수는 "화주들은 관세사가 하는 업무의 소요시간과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수수료로는 고품질 서비스를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관세사의 보수기준을 자율화해 소비자의 이용편익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세사의 공공적인 성격을 보장할 수 있는 보수체계에 대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왕준영 연구원은 "일단은 공정거래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관세사회칙 등을 통해 비상식적인 저가 덤핑요율에 대한 한계선을 책정, 덤핑 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추창근 주필은 "보수의 적정화나 보수기준의 표준화를 법제화한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사적 계약에 있어 어떤 강제성이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지켜지지 않으면 그 또한 무용지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는 관세사의 수급과 시장에 대한 보다 정밀한 진단을 통해 시장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시장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 대안을 심도있게 연구 검토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사 보수료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 패널들. 왼쪽부터 이광우 관세청 서기관, 추창근 브릿지경제 주필, 김두형 경희대 교수, 김재식 서원대 교수, 최준호 백석대 교수, 정임표 제일관세 대표관세사, 왕준영 대한상의 연구원.
방청객들 "관세사는 '을'도 아냐, '병'도 안돼"
이날 토론회에서 플로어 발언에 나선 방청객들은 보수료 책정에 있어서 관세사는 전혀 교섭력이 없다며 보수료 법제화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방청객은 "관세사는 기업과의 관계에서 교섭력이 전혀 없다. '을'도 안되며 '병'보다 밑이라고 봐야 한다"며 "보수료 법제화를 통해 최저기준을 정해야 관세행정과 관세사 업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청객은 "관세사들은 계약관계에서 상당히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 의견이 보수료에 반영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라며 "단순한 통관업무 외에 자문과 통관절차, 필요서류, 컨설팅까지 많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계약관계에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실제로 하는지 (보수료에) 반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청객은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기업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수료 법제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관세사 수수료 법제화를 추진하면 엄청나게 많은 반대 의견에 직면할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이 조그만 관세사 업계의 보수료 적정화를 위해 일하겠나. 그들은 기업들 눈치를 보지 관세사들을 위해 힘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수료를 더 낮게 입찰할 수 있겠냐는 제안에는 이 자리(토론장)에 있는 관세사들이 여기서는 '아니다'라고 답하겠지만, 사무실로 돌아간다면 각자 (저가 입찰을 통해 일감을 따낼)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관세사회 스스로 기준을 만들고 처벌조항을 엄격히 하는게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재식 교수는 "지난 1987년 관세사 시험에 합격한 뒤 '장롱면허'처럼 놔두고는 있지만, 관세사 업계가 잘되기를 항상 희망하는 사람 중 하나"라며 "이러한 토론회가 여론 환기를 통해 제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큰 모멘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