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5년간 178조원으로 제시했다.
재정조달책으로 당장 세율을 올리는 증세(增稅)는 언급 하지 않았다.
재정지출 구조조정과 예상보다 늘어난 세수 등을 통해 공약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기업·부자들에겐 세부담을 더 지운다. 과도하게 적용되거나 정책 목적을 달성한 비과세·감면제도를 정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재원이 부족했을 때 세율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증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다.
공약 이행에 178조…어디에 쓸까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5년 간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선 178조원 규모의 재정이 지출된다.
연간 35조6000억원 수준이다. 공약 추진에 들어가는 돈은 151조5000억원, 나머지 26조5000억원은 지방으로 이전되는 구조다.
복지에 대한 재정지출의 비중이 가장 크다.
5년 간 지출해야 할 돈은 약 77조4000억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매달 10만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0~5세)으로 필요한 재원은 10조3000억원, 기초연금·장애인 연금을 10만원으로 올리면서 23조1000억원이 추가 지출될 전망이다. 또 서민 주거안정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공적임대주택 17만호를 지급함으로써 15조원의 재원이 쓰인다.
일자리 창출,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공약엔 42조3000억원이 투입된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11조4000억원), 4차 산업혁명·R&D(9조5000억원), 청년추가고용장려금(2조4000억원), 청년내일채움공제(4조1000억원), 중소기업·창업 및 소상공인 지원 강화(1조9000억원) 등과 관련된 사업에 재정을 쓴다.
지역경제를 고르게 발전시키기 위해 도시재생뉴딜 추진, 농어업 직불금·쌀생산 조정제 등의 과제를 제시했는데 공약 달성에는 약 7조원이 필요하다. 또 사병들의 월급을 인상하거나 북핵 대응전력 조기 전략화 등의 사업으로 8조4000억원이 쓰일 전망이다.
실업급여 강화, 장병 복무기간 단축, 공공형 변호사 등 제도를 재설계하거나 지방이전 재원으로 약 42조9000억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아니지만 돈 부족할 때 '증세'
관건은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다.
우선 재정지출 절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재량지출은 원점에서 제검토해서 10% 수준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인데,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업과 목표 달성률이 낮은 사업 예산도 골라내 깎을 것으로 보인다. 의무지출은 전달체계에서 발생하는 누수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5년 간 60조2000억원의 재원이 확보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공약 사업이 많은 주택도시·고용보험 등의 여유자금 활용을 확대하면서 35조2000억원 규모의 재원이 마련될 전망이다.
세입 개혁을 통해선 약 82조6000억원의 재원이 조달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에 과도하게 귀착되거나 과세형평에 맞지 않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거나 일몰이 도래한 비과세·감면제를 원칙적으로 폐지(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부가가치세 체납이 많은 업종을 대상으로 금융회사 대리납부제를 우선 도입을 검토하면서 단계적으로 적용 대상을 넓힐 계획이다.
고소득·고액자산가에 대한 과세도 강화된다.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을 비롯해 자본이득·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기반을 넓히고, 상속·증여세 신고세액공제율을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과세형평을 고려해 상속·증여세 과세체계도 개편하기로 했다.
최근 세입 호조와 성장에 따른 세수증가분도 재원조달 방안에 넣었다. 지난해 초과 세수가 20조원에 육박한 데 이어 올해도 작년에 비해 세수가 더 걷히고 있기 때문이다. 5년 간 60조5000억원이 더 걷힐 것으로 분석했다.
국세청의 세원 빅데이터를 이용한 탈루소득에 대한 과세 감시망도 넓힌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 대상(현 계좌잔액 10억원 초과)을 확대하고 외국과세당국과의 정보공조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 법인세의 사전성실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소법인 성실신고확인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로 5조7000억원의 추가 세수가 확보될 전망이다.
그러나 과감한 재정 투입을 약속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178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증세나 적자 국채 발행 없이 세입 확충·재정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서만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향후 현실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인식을 고려한 것인지 증세 여지는 남겨뒀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은 재원조달의 필요성, 실효 세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추진하겠다는 방향성을 밝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