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가구수가 전국적으로 32만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상승을 사실상 예고한 상황에서 그동안 국내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어 온 1400조원의 가계부채 관리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화급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24일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현재 가계부채 총액은 1400조원에 육박했다.
이 중 수입보다 원리금으로 갚아야 하는 부담이 크고, 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부채를 갚기 어려운 한계가구(C그룹)는 31만5000가구로 조사됐다. 이들 가구는 전체 가계부채 가구 중 2.9%에 해당하며 전체 금융부채의 7%에 해당하는 94조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그룹은 대출금리가 1.5%p 오르면 6만가구, 금융부채는 14조6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정부 관계자는 "31만5000가구에 해당하는 C그룹은 가구당 소득이 4100만원 수준으로 가장 낮았지만 가구당 부채는 2억9000만원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자산 및 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다른 가구유형에 비해 크게 높았다"고 설명했다.
소득과 자산이 모두 많아 상환능력이 충분한 가구(A그룹)는 746만가구로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이들 가구가 진 빚은 724조원(54%)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환능력이 양호한 B그룹은 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고 부채/자산평가액비율(DTA)이 100% 이하거나 또는 DSR이 40% 이하이면서 DTA가 100%를 넘는 가구로 전체의 29%를 차지했다. 이들 B그룹에 속한 가구가 부담하는 부채는 525조원(39%)이었다.
반면 부채를 아예 갚기 어려운 상환불능가구(D그룹)가 진 부채는 100조원으로 추정됐다.
정부는 상환능력이 부족할수록 신용대출·신용카드대출 비중 및 사업자금 마련용 대출비중이 높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A와 B그룹에 속한 가구는 담보대출 비중이 각각 83%, 81.9%으로 높았다.
특히 거주주주택 마련용 대출 비중이 47.1%, 34.9%로 조사됐다. 반면 C그룹은 신용대출 비중이 22.8%로 상대적으로 높은 가운데 사업자금 마련용 대출 비중이 40.5%를 차지했다.
또한 상환능력이 취약할수록 직업안정성도 낮았다. A그룹은 정규직 비중이 절반을 넘었지만 B·C그룹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비중이 높았다.
총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은 744조원으로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신용대출이나 비주담대 등의 기타대출이 569조원(41%), 판매신용 75조원(5%) 등의 순이었다. 업권별로는 은행(631조원·46%)이 주를 이루었으며 비은행(473조원·34%), 주택금융공사(210조원·15%) 등이 뒤를 이었다.
가계부채는 2015년부터 작년말까지 연평균 129조원이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는 부동산 투기 광풍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증가세와 밀접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부동산시장 호조 등으로 집단대출과 정책모기지 잔액 증가의 영향이 컸다.
실제 집단대출은 2014년 9000억원에서 2015년 8조7000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16년엔 19조8000억원으로 1년 동안 2배이상 증가했다. 주담대는 총 가계부채의 54%에 달한다. 이 중 주택을 단기에 사고 팔아 시세차익을 노리는 다주택자의 대출 증가가 상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이날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해법을 내놓았다. 차주의 상환능력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심사를 하고, 다주택자의 신규대출을 옥죄는 방안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내년 1월부터 신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하반기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하기로 했다.
자영업자 LTI 근로자 4배 수준…연체발생시 채무조정·저리대출 지원
자영업자 대출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 자영업자 대출은 부동산임대업을 중심으로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8·2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동산업 대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자영업자 대출금액은 2012년 355조원에서 4년 사이 166조원 늘었다.
8·2 부동산 대책 등으로 가계대출이 막히자 대출수요가 자영업자 대출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한 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개인사업자 대출에서 부동산임대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소매업·음식점업에서는 저신용자 비중이 높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자영업자의 소득대비 대출비율(LTI)은 7.5배로 근로자의 1.8배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 중 부채 상환능력이 낮고 금리 상승에 취약한 생계형 자영업자(대출금액 3억원이하·연소득3000만원이하)가 가장 큰 위험군에 속했다. 이들 영세 생계형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대출금리 상승과 경기 위축이 맞물리면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영업자 중 사업자대출이 있는 경우는 160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사업자대출만 보유한 자영업자는 31만2000명이고 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동시에 보유한 자영업자는 129만명에 달했다. 자영업자들이 보유한 사업자대출은 총 81조원이다. 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동시에 보유한 대출은 440조원 규모였다.
가계대출 동시보유 자영업자 차주는 개인사업자 대출만 보유한 차주에 비해 평균대출금액이 높은 수준을 보였다. 업종별로는 소매업·음식업에서 가계대출 동시보유 차주수가 많았고, 개인사업자 대출만 보유 차주는 부동산임대, 소매업에 주로 종사하고 있었다.
건전성 측면에서는 가계대출 동시보유 차주는 저신용자 비중, 고금리대출 이용비중, 잠재연체차주 비율이 개인사업자대출만 보유한 차주보다 각각 8%, 10%, 1.8% 높은 수준을 보였다.
정부는 영세자영업자 지원과 부동산 임대업자 대출 규제 등을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종합 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특히 연체발생의 경우 이자율·원금 감면의 채무조정과 함께 재창업자금 저리대출을 지원한다. 폐업시에는 컨설팅·재기교육·정책자금 지원과 함께 3000만원이하의 소액 국세체납액을 면제해주는 방안도 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