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2018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당부했지만 여야는 아직까지 힘겨루기만 거듭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을 최대한 사수하려는 여당과 삭감을 벼르고 있는 야당간의 공방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여당은 이번 예산안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을 담고 있고 각종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마중물이기 때문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대안책은 요원해보인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강성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유승민 호(號)로 새롭게 출범한 바른정당을 새로운 협치 채널로 삼아 야당과의 간극을 좁혀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야당은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정부·여당에게 확실한 견제구를 날려 존재감 부각은 물론 지역구 예산을 확보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회복에도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민생과 직결되는 예산안을 놓고 지나치게 정쟁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비춰보일 수 있어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 여론이 예상된다.
與, 팩트 체크하며 반박…바른정당에게 '러브콜'
민주당은 14일 정부 예산안에 대해 강경노선을 보이고 있는 한국당은 비판하면서도 유승민호로 새롭게 출범한 바른정당을 향해서는 협조를 부탁하는 투트랙 전략을 보였다. 반대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당에 힘을 빼기보다는 보수정당과 차별화를 선언한 바른정당에 당력을 집중해 실리 있는 성과를 얻기 위한 복안으로 읽힌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바른정당의 새 길에서 첫 번째 마주친 관문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상식이 통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사람예산·정의입법에 바른정당의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 드린다"고 했다.
이어 그는 "사람예산은 우리 경제를 양극화와 불평등의 늪에서 구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제 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마중물"이라면서 "이는 유 대표께서 평소 강조해온 '따뜻한 보수'의 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깨끗한 보수, 보수다운 보수를 꿈꾼 바른정당의 창당정신을 유 대표께서 잘 지켜나가시리라 기대하며, 민주당 역시 보다 열린 마음과 자세로 야당과 함께 국민들의 삶의 문제 해결에 집중해 나가겠다"며 거듭 협치를 강조했다.
이와 별개로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한국당에서 정부 예산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관련해 "팩트 체크하겠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최저임금과 관련해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에 대해 "일부 야당에서 민간 기업의 인건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팩트 확인부터 하겠다"고 했다.
이어 김 정책위의장은 외국 사례를 꼽으면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가 사회보험료 지원, 세액 공제 등 여러 형태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인건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가 이미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작년 미취업자 고용, 중소기업 청년 인턴, 시간선택제 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경우에 정부가 근로자 한명 당 월 20~60만원의 임금을 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의 상당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한 것"이라면서 "한국당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문재인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덮어놓고 비난부터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을 한시적으로 도입한 것과 관련해 '줬다가 뺏는 격'이라는 야당의 비판에 대해 김 정책위의장은 "민주당과 정부의 근본적인 목표는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이 최저임금 1만원이 돼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불공정 갑을관계 등 잘못된 경제 구조를 바로 잡는 것"이라면서 "한시적 지원이라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 없도록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을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野3당, '나쁜 예산안' 규정하며 한 목소리로 비판
한국당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 위원(곽대훈·경대수·김기선·김도읍·김광림·김성원)들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예산으로 정상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 예산안을 '나쁜 예산안'으로 규정하며, 14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철저한 점검을 통해 국민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앞서 한국당이 규정했던 '7대 퍼주기'를 포함해 공무원 증원예산, 일자리안정자금, 좌파 시민단체 등 퍼주기 예산만큼은 반드시 삭감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아동수당 및 기초연금수당 인상 등을 '묻지마 복지'로 지칭하며 송곳 검증을 경고했다. 또 민생과 관련 없는 불요불급한 정권홍보예산은 감액해 민생 예산으로 전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국민의당은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안정자금의 세부시행계획을 발표한 내용이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과 다르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예산안에는 국민연금 보험료와 고용보험료 지원 대상을 근로자 월 보수 140만원 미만에서 160만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지원수준을 60%에서 70%로 인상하는 것으로 돼있다"면서 "그런데 정부의 시행계획은 월 보수 190만원으로 다시 확대하고 지원수준도 최대 90%까지 인상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게 진실이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국회가 예산을 심의중임에도 정부는 내용을 슬그머니 바꾸고 국회에 구체적인 내역도 제출하지 않은 채, 대국민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명백한 국회 예산 심의권 침해이자 국회 기만"이라고 꼬집었다.
바른정당도 공무원 증원 예산, 조세수입과 맞지 않는 복지 지출,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유승민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연석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정책적 입장을 빨리 정해서 당의 입장을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