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바뀌는 순간 = 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부여를 폐지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수정안)이 전격 통과됐다. 재석의원 247인 중 찬성 215인, 반대는 9인에 불과했다. (사진 김용진 기자)
2017년 12월8일 금요일 오후 2시47분, 세무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수십 년동안 세무사 자격증을 '덤'으로 얻어왔던 변호사들의 '특권'이 이날 이 시간 전격 철폐된 것이다.
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고 정세균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본회의 안건으로 부의된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를 골자로 한 세무사법 개정안(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수정안)을 표결 통과시켰다.
재석의원 247인 중 찬성 215인·반대 9인·기권 23인, 당초 예상대로 표결에 부쳐지자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쏟아졌다.
지난해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한 채 표류했지만, 국회선진화법의 힘을 빌어 본회의까지 치고 올라와 오래된 특권을 역사의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세무사 자격증은 세무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주어지게 된다.
56년 성역, '한 방'에 무너졌다
세무사법이 제정된 시점은 1961년 9월9일. 첫 시험 합격자는 4명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세무대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정부는 세무사 시험 합격자 외에도 변호사, 회계사, 상법·재정학·회계학 또는 경영경제학 석박사학위 보유자 국세 또는 지방세 행정 10년 이상 경력자 등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세무사의 숫자를 늘렸다.
이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자 1972년, 1999년 각각 석박사 출신 등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및 국세 경력자에 대한 자동자격을 각각 폐지했다.
단 국세 경력자에 대한 자동자격은 폐지하되, 일부 시험과목을 면제(5급 이상 10년 이상 재직자 1차 시험 면제, 20년 이상 재직자 1차 시험 면제+2차 시험 일부 면제)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극렬한 논란 속에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가 추진됐지만 실패, 이들이 '세무사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에서 세무사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애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법 개정이 발판이 되면서 공인회계사와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를 둘러싼 자격사간 공방전이 본격화됐다.
이후 17대, 18대, 19대 국회에서 꾸준히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 법안이 제출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다만 2011년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만이 폐지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이 법안이 제출됐고, 기획재정위원회를 빠르게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지만 끝내 법사위의 벽을 뚫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 조항에 따라 정세균 국회의장이 해당 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면서 십 수년을 이어 온 지루한 싸움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승패가 갈렸다.
◆…이 엄동설한에 삭발까지 했지만... = 김현 대한변협회장이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를 골자로 한 세무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직권상정을 반대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용진 기자)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는 엄밀히 따지면 자격사간 '자존심 싸움'에 가까웠다. 자동자격 부여제도가 내년부터 폐지되기는 하지만, 변호사들은 변호사 자격을 발판으로 세법과 관련한 법률대리 업무는 자유롭게 할 수가 있다.
실제로 2011년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 이후에도 공인회계사들은 여전히 세무대리 업무를 하고 있으며 세무대리 시장에서 세무사 업계가 차지하는 파이(매출확대 등)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등의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무사 업계 입장에서 일단은 '2류 자격사'라는 꼬리표를 떨쳐내며 자존심을 세운 것이 최대 수확물이다. 조세와 관련한 업무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자격사라는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측면에서 세무사 업계의 궁극적인 목표지점은 '조세소송대리권 확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세소송대리권 확보는 자존심 문제가 아닌 '먹고 사는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세무사 업계 입장에서는 반드시 쟁취해야 할 숙원 중 숙원 사업이다. 다만 타 자격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를 위해 쓴 시간과 노력의 배 이상을 쏟아 부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