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의 권리구제 기관인 조세심판원이 남몰래 속앓이를 알고 있다는 전언이다.
조세심판원이 나름 사건처리 기간 단축에 노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딱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하기가 애매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특히 사건처리 기간 단축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에는 국세청과 관세청 등 과세관청이 제대로 '협조'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조세심판원 안팎에서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법정처리기한은 90일, 실제는...?
현행법상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조세불복 사건의 법정처리기한은 90일. 즉 사건이 조세심판원에 접수되어 담당 심판부 배정 및 심리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린 후 불복을 제기한 납세자에게 심판결과를 통보해 주는데 90일의 시간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정처리기한은 그저 허울일 뿐,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굳이 따지면 심판원이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심판원에 접수된 사건(이월사건 포함) 8351건 중 6751건이 처리됐는데, 건당 평균 처리기간은 157일이었다. 비록 1년 전에 비해 14일 정도 줄었으나 법이 허용하고 있는 수준에는 한참을 못 미치고 있는 형편이다.
심판원의 지지부진한 사건 처리 문제는 사실 하루이틀 문제는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문제시 되어 왔고, 인력부족 등 이런 저런 이유가 요인으로 꼽혀 왔다(일부 고액사건의 경우 심판원이 고의적으로(?) 사건 처리를 미루는 문제도 포함).
최근 심판원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건 처리 지연의 원인 중 하나로 과세관청인 국세청과 관세청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게 나오고 있다.
세월아, 네월아... 법 안지키는 과세관청들
법정처리기한의 기산일은 납세자가 조세심판원에 청구서를 제출한 날부터다.
예를 들어 납세자 본인이 조세심판원을 방문해 사건을 접수했다면 그 날부터, 납세자가 관할 세무서를 통해 조세불복을 제기했을 때도 그 날부터 계산된다. 납세자가 청구서를 우편으로 보냈다면 우편물이 조세심판원에 도착한 날부터다.
심판원은 사건을 접수하면 납세자가 제기한 청구서를 과세관청에 다시 보내게 되고 과세관청은 이에 대한 답변서를 추가해 보내면 심판원은 담당 심판부를 배정하는 등 본격적인 심리에 착수하는 구조다.
여기서 문제가 불거지는 대목이 심판원이 접수받은 사건에 대한 과세관청의 답변서를 제출받는 기간이다. 현행 '청구서를 받은 과세관청은 이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청구서에 대한 답변서를 첨부해 조세심판원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과 관세청 등 과세관청이 '10일 이내'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심판원 내부의 의견이다. 사실 심판원 내부에서 정확한 통계치는 가지고 있진 않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다만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했을 때 국세청의 경우 1달 이상, 관세청의 경우 2달 이상 걸려 의견서가 넘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심판사건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30일에서 많게는 60일이나 '까먹고' 들어가는 구조이다 보니, 법정처리기한을 지키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는 셈.
가뜩이나 부족한 심판원 내 인력으로 다른 사건 처리를 진행하다 보면 과세관청에 전화해 답변서 제출을 종용하기도 엄두가 나지 않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귀띔이다.
심판원 관계자는 "선결정례가 있거나 사안이 복잡하지 않는 경우 답변서도 빨리 제출되고 결정도 빨리 이루어지지만, 사안이 복잡한 경우에는 다르다. 답변서도 늦게 오는 경우가 많고 심리 과정에도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정처리기한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법을 지키지 못하는 과세관청들도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과세관청 관계자는 "현장에서 소액이나 세법 해석이 단순한 사건은 잘 지켜지고 있는데, 해석이 복잡하거나 고액 사건의 경우에 제출 기간을 지키는 것이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법정 기한을 지키지 않은 경우 인사상 패널티를 주는 제도가 운영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장의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심판결정 관련 각종 기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차피 지켜지기 힘든 구조라면, 심판 담당자들이 '숫자의 압박'이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에서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이 같은 기류를 반영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심판(심사)청구를 제기한 납세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취지로, 지난 2014년 당시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은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 개정안은 심판(심사)청구의 결정기간 90일을 넘겼을 때, 부득이한 경우 1회에 한해 30일 이내에서 연장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사건처리 기간을 연장할 때도 그 이유를 청구인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있어 납세자의 권리 보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이 개정안은 자동폐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