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이나 지분양도 등 사업철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회사설립 당시에 등기하거나 신고했던 모든 행정기관에서 말소나 변경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장이 중국이기 때문에 부딪히는 실무적인 애로가 있다. 이를 고려해서 철수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정기관의 업무회피로 인한 지연
과거에는 외국인투자기업의 설립을 비준(허가)해 준 기관에서 기업의 해산이나 등기변경을 심사·비준했는데 이들의 업무처리 자세는 외자유치과정에서 보여줬던 적극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한 외자유치 실적은 공적으로 인정받는 반면에 철수실적은 그 반대이므로 외국인투자기업의 철수는 공무원에게는 탐탁하지 않은 업무로 인식되고 있다.
외자유치 장려정책을 펼쳐 온 중국 정부의 정책기조에 익숙한 공무원들의 실적 중심주의로 인하여 유치업무에 비해 청산관련 업무는 기피하거나 무관심한 자세를 보이는 경향이 심하다.
한편, 2016년부터 외국인투자기업의 심사비준제도가 신고제로 전환되었다. 이로 인하여 외국인투자기업의 설립, 청산 및 변경에 있어서 원칙적으로 신고제를 시행하고 있으므로 과거처럼 심사비준기관의 고의적 업무지연이나 회피와 같은 애로사항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 몸에 배인 행정기관 공무원이 기업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히 법률의 개정만으로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여전히 기업이 제출한 서류에 토를 달면서 계약서가 모범양식에 부합하지 않으니 수정해서 제출하라는 등의 요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양도계약서의 매매쌍방 대표이사의 사인을 믿을 수가 없으니 양쪽 대표이사가 공무원 본인이 보는 앞에서 직접 사인하는 것을 보여달라고도 한다.
이처럼 중국의 행정실무는 믿기 어려운 사건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만 예상하는 시간 내에 철수업무를 완료할 수 있다.
자의적 해석에 따른 시간 소모
기업해산에 대한 심사비준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대상기업이 청산을 진행해도 되는지 여부를 주요 행정기관인 세관, 노동국, 세무국, 외환관리국이나 공안국 등으로부터 예비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다. 행정부문 공무원의 업무처리회피 자세로 볼 수 밖에 없다. 또한 대부분의 외국인투자기업들은 중국에서 회사정리 경험이 없어 청산절차가 개시된 초기의 혼란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는데 한계가 있다. 청산관련 법제에 익숙하지도 않은 공무원을 상대로 까다로운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도 많다.
중국은 여러 계층의 입법체계를 가지고 있어 각종 상이한 등급, 상이한 효력의 법률 및 규정을 다른 입법주체들이 제정하고 있어서 법규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법 집행기관인 일선 행정기관의 재량권이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청산을 진행하는 기업들은 심사비준을 통과해야 하는 법정기한을 지키지 못하여 청산개시일을 고쳐야 하거나 기한을 초과하였음에도 비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비준을 받아내는 등의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
법규 미비로 철수 완료시기 확정불가
기업이 의사결정기관의 결의를 통해서 진행하는 자체청산은 청산완료기한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다. 이로 인해 기업의 재산이나 채권채무의 처리 및 세무처리 상황에 따라서 소요시간이 다를 수 있다.
청산관련 업무처리 기한과 관련된 법규는 이미 폐지된 <외국인투자기업 청산방법>의 내용이 유일하며, “기업의 청산기한은 청산시작일로부터 180일을 넘기지 못하고 특수한 경우에만 1회에 한해 90일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장 신청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회사법과 기업파산법의 관련 규정을 통해서는 최종 청산기한을 추정할 수 있는 조항을 발견할 수 없다. 관련 행정부문의 업무처리 일정에 따라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한편, 법원에 의한 강제청산일 경우 청산조 성립일로부터 180일 내에 청산을 완료하여야 한다. 특수한 사정으로 미완료 시 법원에 기간 연장신청이 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청산완료 시기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실무적으로는 제조기업의 경우 약 1년으로 예상하고, 비제조업인 경우에는 10개월 정도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에 의한 평균치일 뿐이며, 실제로 필자가 위탁 받은 청산업무 중에는 2015년 6월에 청산개시를 했으나 2018년 2월 현재까지도 종료되지 않은 프로젝트도 있다.
행정기관 공무원의 경험 부족 변수
대부분의 지방정부 심사비준기관의 공무원은 청산관련 업무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민원인의 질의에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경우가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 외자유치에 혈안이 되어서 유치실적이 승진과 성과급의 기준이 되다 보니, 유치와 관련된 법규와 제도는 눈을 감고 읊을 수 있을 정도이나 철수와 관련된 제도에는 관심자체를 가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청산절차와 관련하여 등기말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세무, 외환, 세관 등 유관기관 공무원들도 청산과 관련한 법률 상식이 부족하여 유기적인 협조가 뒤따르지 않아 불편이 따른다. 청산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담당자가 본인의 업무부담을 회피하기 위해서 오히려 정상적인 청산을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정상적인 청산절차를 진행하고자 하는 기업의 의지를 꺾는 사례도 있다.
토지사용권과 공장 매각의 어려움
토지사용권을 유상으로 취득하여 공장을 건설한 경우 부동산을 처분하여 투자자산을 환수하는 전략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수요자 물색이 어려워 철수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현재 중국의 토지가격은 지방정부의 헐값 출양(국유토지의 사용권을 민간에 불하하는 것)을 금지하고 중앙정부에서 기준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과거 우리 기업들이 중국 진출시에 취득한 토지가격에 비해 크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사업을 정리하고자 하는 지역의 토지는 최근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선호하는 곳과는 차이가 있으므로, 철수기업의 공장을 매각하려 해도 시가에 맞춰 매입하려는 실수요자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회사 직원의 비협조 또는 투서위협
회사가 어려워진 틈을 타서 회사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해져 경영진의 지시를 듣지 않거나, 회사재산을 미리 빼돌리기도 한다. 회사가 경영난에 봉착한 경우 경영정보 접근이 쉬운 내부 관리직원들 중 쌓여있던 불만의 표현이나 해고에 대한 보상금 요구 등을 이유로 경영진을 협박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사업정리를 원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계자료가 부실한 편이며, 경영기간 중 세무기관에 신고한 자료와 실제 기업상황과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 중국인 직원은 회사 내부자료를 모아 두었다가 세무당국에 투서하겠다며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면세설비의 불법 매각 또는 이동, 면세자재의 불법 내수판매 등 행위는 이들 불량 내부직원에게 아주 유용한 협박수단이 된다. 한국인 중에서도 일부 불만을 품은 직원은 회사재산을 미리 빼돌리거나, 중국에서의 자립기반 지원을 요구하면서 어제의 측근이 탈세 고발자가 되어 경영진을 배반하는 경우도 있다.
회계자료 부실에 대한 소명 어려움
사업철수를 진행할 때 그 동안의 왜곡된 회계처리가 원활한 행정절차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사업정리 대상기업의 주주가 한국에서 상장회사인 경우 상장회사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 자회사인 중국법인의 결산내용을 분식하거나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
주주가 비상장회사일지라도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금 회수를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로 중국 현지법인 결산 시 분식행위를 유도하는 사례도 많이 발견된다. 중국 행정기관은 신청기업이 제출한 자료와 중국 공인회계사가 서명한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신청수리 여부를 판단하므로 회계자료의 부실에 대한 소명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기업에게 있다.
중국 공인회계사는 평소 기업의 요구에 협조를 잘 해주는 경향이 있지만 자신들의 책임이 노출되는 상황 하에서는 태도가 돌변하고, 회계자료를 제출한 기업에게 회계오류의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합자기업은 중국측 파트너 협조가 중요
중외합자기업의 청산은 의사결정기관인 동사회의 만장일치 결의사항이므로 한국측 투자자만의 의지로는 사업정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측 합작파트너는 자신이 투자한 원금과 기회비용을 요구하기도 하며, 실현 불가능한 요구사항을 제시하면서 한국 투자자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사의 자산을 자신이 헐값으로 구매하거나 무단 활용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청산을 강행하고자 하는 때에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 강제청산으로 진행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시간과 비용의 부담이 만만치 않은 문제가 있다.
이택곤 BKC컨설팅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