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감사법 개정,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영향으로 올해 회계업계의 인력 수급 전쟁이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하게 전개된 가운데,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 사이에서도 희비(喜悲)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대 회계법인은 올해 9월 기준 공인회계사 1198명을 신규 채용했다. 지난해 986명보다 212명 증가한 수치다.
특히 올해(제53회)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 904명 중 792명(87.6%)이 4대 회계법인에 채용됐는데, 대학 1~3학년 합격자가 227명인 점 등을 감안하면 '취업의향'이 있는 합격자는 사실상 전원 4대 회계법인에 채용된 것으로 보인다.
4대 회계법인 이외의 회계법인들은 신규 채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인 셈. 이처럼 신규 채용에 대한 4대 회계법인과 기타 중소형 회계법인 간의 차이가 극명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올해에는 4대 회계법인 내부에서도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나 눈길을 끌고 있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회계법인 매출 규모 1, 2위인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은 채용 목표치를 넘어섰다. 특히 삼일회계법인의 경우 당초 250~300명의 회계사를 채용하기로 했었는데, 365명을 채용해 최대 목표치를 훌쩍 초과했다.
올해 채용 목표를 343명 이상으로 책정했던 삼정회계법인은 370명을 뽑아 4대 회계법인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안진회계법인과 한영회계법인은 채용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안진회계법인은 203명을 채용, 4대 회계법인 중 가장 적은 인력을 수급했으며 당초 목표치인 300명에 97명이 모자란 것으로 집계됐다. 한영회계법인 역시 350명을 뽑겠다는 목표에 어울리지 않는 260명을 채용하는데 그쳤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해 회계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근본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회계사 합격자는 매년 900명 수준인데, 올해 4대 회계법인의 목표 채용인원은 1300여명에 달했다. 합격자들이 특정 회계법인에 몰리게 되면 나머지 회계법인들은 아무리 4대 회계법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도 신규 채용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합격자들은 4대 회계법인에 입사지원서를 모두 넣고 면접 등을 통해 자신이 근무할 회사를 저울질 한다. 이는 회계사 합격 인원이 채용 인원 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한 곳에 합격자들이 몰리게 되면 다른 곳은 당연히 그만큼 인력을 수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이사까지 나서며 공격적인 영입 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채용 목표 달성에 실패한 안진회계법인과 한영회계법인 입장에선 이번 채용결과가 '씁쓸'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영업정지로 지난해 채용규모를 150명 수준으로 줄였다가 올해 300명의 채용 계획을 세운 안진회계법인은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 지급, 감사시즌 후 격려금, 주 4일 근무 등 합격자들의 구미가 당길만한 채용전략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모양새가 됐다.
한영회계법인 역시 올해 입사하는 신입 회계사 전원에게 입사 축하금 100만원을 지급하고 경력 회계사에게는 직급, 경력 등을 고려한 사이닝보너스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목표인원을 채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90~100여명의 인원을 더 채용해야 하는 두 회계법인은 기한을 두지 않고 신규 채용을 계속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올해 합격자는 이미 대부분 소진됐고, 두 회계법인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1~2년차 회계사들마저 일부 인원이 이직을 원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향후 인력 운용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는 우려의 시각이 팽배한 상황이다.
반면 채용전쟁에서 승리한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은 성공적인 결과에 고무된 모습이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 만족하고 있다. 개정 외감법, 단축 근무제 등 제도 변화로 향후 인력 운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유 있게 인원을 뽑았다"면서 "설문조사 결과 심도 있는 면접, 업무 환경 등이 마음에 들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앞으로도 채용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정회계법인 관계자는 "입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성장성과 주변 지인 추천, 다양한 경력개발 기회 제공 등을 선택의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울러 삼정의 브랜드 이미지가 신입회계사들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더이상의 신입회계사 채용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