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총리 이미지 vs 험한 일 도맡은 검사 출신
총리 출신 정치인, 신인 한계 드러냈지만 지켜봐야
탄핵 여진 잠재우고 보수세력 질서 정리 과제 받아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새 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전 총리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황교안 대표체제로 2년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2년 전 탄핵사태 이후 거대 보수정당 역사상 최대 위기 속에서 표류한 한국당이 황교안 대표 체제하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황교안 후보는 지난 27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6만 8713표를 얻어 2위 오세훈, 3위 김진태 후보를 꺾고 신임 당대표로 당선됐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국무총리 출신이라는 점과 '새 인물(New Face)'이라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 黃, '이회창과 비슷' 평가…총리 출신 정치인 재시험대
과거에도 국무총리 출신이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으나 대권까지 거머줜 사례는 없다. 이회창 전 총리는 강력한 당권 장악력과 대중 지지를 모두 갖췄지만 대선에 세 번 나서 모두 낙선했고, 안정적 이미지로 돌풍을 일으켰던 고건 전 총리도 대권 출마를 중도 포기했다.
각각 운동권·여성인권계에서 출발해 정치에 잔뼈가 굵었던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도 대선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고, 합리적 경제 학자로 입지를 다진 정운찬 전 총리 역시 대선을 완주하지 못했다. 총리 출신은 아니지만 가장 최근엔 외교관 출신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여론의 지지를 받았지만 고심 끝에 포기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모두 좌절을 맛봤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주자 1위로 위상을 높인 황 대표로선 대선까지 남은 기간 3년 중 2년을 한국당 대표로 있으면서 사실상 본격적인 대권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황 대표가 법조인(검사) 출신이라는 점과 강력한 권력의지를 품었다는 점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재림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황 대표가 이 전 총재만큼의 리더십을 보이면서 당을 접수한다면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한국당과 황 대표 본인에게 2년의 시간은 성공으로 기억될 것이다.
반면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 관료 출신 정치인처럼 좋은 철학과 대중적 인기를 가지고도 복잡한 정치권에 적응하지 못할 우려도 적지 않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황 대표는) 고건 전 총리와 행적이 가장 비슷한데, 그런 분들은 외부 공격에 약하고 의전에 익숙해서 대중친화적 선거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정치에 들어와 대중에 완전히 노출되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실수할 수 있어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변혁을 이끌기보다는 맡은 임무를 책임감 있게 완수하는 공직 출신들이 정계 입문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관문인 셈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치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없을 뿐더러 공안검사 출신으로 험한 일을 처리하면서 쟁의에 잔뼈가 굵은 그를 단지 점잖은 이미지의 총리로만 바라보는 것 또한 편협한 시각일 수 있다.
◆…황교안 한국당 신임 당 대표가 당 지도부와 함께 28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탄핵으로 쪼개진 보수…어려운 숙제 받은 黃
당대표 선출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한국당의 탄핵 여진(餘震)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건이다.
황 대표가 한국당 입당 43일만에 당대표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던 것은 탄핵 정국에서 총리 및 권한대행을 지내면서 보인 차분하고 절도있는 모습에 대중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보수 지지층에서 탄핵을 인정하는 세력은 황 대표가 권한대행 시절 보여준 안정성에 호응했다.
일부 탄핵을 부정적으로 보는 지지자들은 또 그런대로 박근혜 정부 마지막 총리였던 황 대표에게 심정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황 대표도 입당 초기 탄핵에 대한 발언을 아꼈다. 당대표 경선에 돌입하자 친박 세력과 지지층을 끌어안는 발언을 몇 차례 했지만 입장 표명을 되도록 회피하면서 양측을 모두 끌어안는 전략인 '보수대통합'을 외쳤다. 전당대회까지 한달여 남짓 그의 애매모호한 화법은 그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을 심기에 충분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대표가 "박근혜 국정농단의 실질적 책임있는 종범 수준"이라며 황 대표를 평가절하한 점과 보수대통합을 위해서는 본인도 언급한 것 처럼 바른미래당과의 당대당 통합 등 보수세력 교통정리가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탄핵 사태에 대한 황 대표와 한국당 내 분위기를 쇄신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이 과정에서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상대하면서 당의 구심점을 갖추고, 더 크게는 보수대통합이라는 난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검사 출신이자 총리, 권한대행을 역임한 황 대표가 초고속으로 당대표에 오르기까지 보인 특유의 정중동(靜中動) 스타일이 한국당의 미래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