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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따라 역사 따라]

조선 재정개혁의 선구자 어윤중

조세일보 / 문점식 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 2019.03.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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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정치가. (사진 = 네이버 인물사전)

어윤중은 1848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1868년 그의 나이 21살 되던 해에 과거 시험에서 수석을 하고 1869년부터 관리가 되었다. 1876년에는 전라우도 암행어사가 되어 약 10개월 동안 전라우도의 각 고을을 살펴본 뒤 각 고을 수령을 평가했다.

그는 조세제도의 폐단을 실감한 후 보고서를 고종에게 제출해 고종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1881년 어윤중은 34살 때 일본시찰단으로 참여했는데, 이 조사단은 12명의 분야별 책임자를 포함한 총62명으로 구성되어 일본 정부의 각 부서를 돌아보게 되었다.

고종은 어윤중이 전라우도 암행어사를 하면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므로 어윤중을 조선의 재정개혁을 위한 적임자로 판단해 중요한 재정분야 조사업무를 맡겼다. 어윤중은 1881년 4월 11일 쓰시마에 도착해 약 4개월간 일본의 산업시설과 일본정부 각 부서를 조사하고 귀국했다.
 
어윤중은 귀국 후 '일본문견사건(日本聞見事件)'이란 보고서를 7명의 분야별 대표와 공동으로 제출했고, 따로 '일본대장성 시찰기'를 남겼다. 이 기록에는 일본 대장성 직제와 사무장전 그리고 '재정견문(財政見聞)'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일본대장성 시찰기는 일본대장성의 각 부서와 업무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며, '재정견문'에서는 메이지 유신이후 재정상황과 세입, 세출, 조세 등 재정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메이지 유신의 핵심이 세제개혁과 금융개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윤중은 이와 별도로 조사단에 참여하면서 '수문록(隨聞錄)'이란 글을 남겼는데 그 때 그때 보고 관찰한 내용을 메모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것으로 조선의 내정개혁 방안을 기록해 놓았다.

이 수문록 내용 중에 어윤중은 중앙집권제 국가를 위하여 국세와 지방세가 필요하다는 것도 기록해 놓았다. 어윤중은 또한 그 당시에 매우 중요한 일본의 세관제도와 중국의 텐진 해관을 둘러보고 세관제도 도입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1881년 9월 26일 김윤식, 어윤중 등 개화파들은 총 69명을 중국 텐진기기국(天津機器局)에 파견되어 병기제조기술을 배우고 돌아왔다. 어윤중은 조사시찰단 업무가 끝나고 텐진에 가서 이홍장과 만나 조선과의 교역관련 현안들을 협의했다.

1882년에 어윤중은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업무를 협의하러 텐진으로 갔고 조영수호조규체결문제도 협의하고 오는 외교관역할도 수행했다.

1882년 7월23일에 임오군란 일어나자 어윤중은 북양함대 제독 정여창, 마건충과 함께 청나라 군함을 타고 인천으로 왔다. 김옥균은 일본군함을 타고 일본에서 귀국했다. 이후 어윤중은 청 편에 서서 대원군 납치에 개입했고, 청과 가까운 사이였으므로 초기에는 김옥균과 개화의 동지이었지만 임오군란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갔다.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때 김옥균은 어윤중을 동지라고 보지 않고 청나라 편이라 생각해 비밀에 부쳤으므로 갑신정변이 일어 난지 이틀 후에야 어윤중은 갑신정변 소식을 알게 되어 죽음을 면했다.

1894년 일본은 흥선대원군을 앞세우고 경복궁에 들이닥쳐 친일정부를 탄생시키고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이 조선에 새로 정부를 출범시키고 갑오경장을 실시해 군국기무처가 신설되었는데 김홍집이 총재로 임명됐다. 어윤중은 재무를 담당하는 탁지부대신이 되어 재정을 총괄하게 되었다.

김옥균이 호조를 장악하여 조선을 개혁하려 했는데, 이젠 그 역할을 어윤중이 하게 된 것이다. 어윤중은 갑오개혁의 핵심인 재정개혁을 단행했는데 조세수납을 탁지부로 일원화하는 한편, 각종 세금을 돈으로 내는 금납제를 실시했다. 고리대로 폐해가 컸던 환곡제도를 폐지하고 진휼기능만 담당하게 하는 사창제로 개선하기도 했다.
 
1895년 일본의 압박이 심해지자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1896) 명성황후 시해와 관련된 대신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김홍집은 백성들에 의해 길거리에서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타살되었다.

어윤중은 명성황후 시해 때 고향에 있어서 살생부에서는 빠졌지만 일본 측을 대변하는 역적으로 몰려서 위험했는데, 1896년 경기도 용인에서 마을 주민 정원로 일당에게 잡혀 맞아 죽었다.

그의 나이 48세 되던 해에 조선에 근대재정제도를 도입했던 어윤중의 비참한 최후였다.


회계법인 바른
문점식 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약력] 현)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공인회계사
전)아시아태평양회계사회 이사, 전)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 전)한국세무학회 부회장
[저서]“역사 속 세금이야기”
[이메일] jsmoon@baruna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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