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심상정 위원장이 선거제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의원 정수 동결을 전제로 한 선거법 개정이 포함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통과된 지 1주일만에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와 '꼼수 법안'의 대표사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고, 의원 수 확대에 반대하는 여론조사가 이어지자 우선 의원 수 300석 동결 방식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패스트트랙으로 확정한 뒤 의원 수 확대를 시도한다는 비판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7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의원 수 확대를 주장했다. 박 의원은 "비례대표가 늘어 지역구가 줄어들면 현재 농어촌 지역구는 형편없이 더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간 평화당에서는 김종회 의원 등이 지역구 의석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왔으나 패스트트랙 지정 후 의원 수 확대를 주장하기는 박 의원이 처음이다.
박 의원은 "수도권 또는 대도시 중심으로 의석이 배분된다고 하면 농어촌의 피폐는 불 보듯 뻔하다"며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봐서 농어촌 지역 (의석)은 보강시켜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논의 때도 여야가 약 30석 내지 60석 증원을 검토할 때(라고 이야기했다)"라며 "인구 5000만 명에 비해 300석은 적다"고 주장했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제 개혁안에 따르면 전체 의석수 300석에 현행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을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으로 수정하게 된다. 지역구는 28석 줄게 되는데,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구의 통폐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석 수를 330석 안팎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됐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의석 수 증가에는 반대한다는 결과가 이어지자 여야 4당은 비례대표를 늘리는 만큼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왔다. 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더불어민주당 보다는 야3당이 적극적이었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은 지난해 12월부터 의원 수를 현행보다 10% 늘린 330석으로 확대하고,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해왔다.
그러다 한국당이 의원 수를 10%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를 없애자고 주장하면서 야3당은 더불어민주당과 논의를 거쳐 의원 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지정 1주일만에 의원 수 확대 주장이 재기된 것이다.
민주당은 우선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은 아직 이와 관련한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의원정수는) 그렇게 쉽게 늘린다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라며 "우리 당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동의할 수 없는 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홍 원내대표는 "(선거법 논의 과정에서) 의원 정수를 360명까지 늘리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제가 '지금 국민들이 이렇게 국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높은데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국민적 동의를 얻겠느냐'고 설득해 최종적으로 지역구 225명, 비례대표 75명 안을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지난해 말, 올해 초 의원정수 확대 방안도 고려하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동결로 선회한 것이어서 국회 상황에 따라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주당 내에서도 내년 총선 공천 문제에 민감한 일부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구 의석 감소에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가 통폐합될 것을 우려해 평소보다 지역구를 더 자주 방문하는 등 벌써부터 내년 총선 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트랙 지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한국당은 '의원정수 확대론'에 선거제 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며 공세를 이어갔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박 의원도 그렇고 모두 의원정수 300석은 적다면서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결국 밥그릇 늘리기를 반영하자는 건데 한국당은 범여권 4당에 모든 것을 원천무효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도 "동물국회라는 비난을 받아가며 패스트트랙에 태운 선거제 개편안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려는 꼼수에서 시작된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구 의석이 많이 줄게 된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4당이 당론을 모아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올렸으나 의원 수 동결 원안대로 표결이 진행될 경우 의원 개인의 판단에 따라 야 4당 소속 의원들도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결국 본회의 전에 의원정수 확대를 여야 4당이 공론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와 꼼수 입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