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金 '5.1 경기장' 감동적 연설 불구, 남북 관계 여전히 오리무중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서 기대감 키웠으나 하노이 회담 결렬로 냉각
트럼프-김정은 '친서외교'로 불씨 키워, 문대통령, 촉진자 재천명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으로 건너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좌측)과 이를 지켜보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사진공동기자단)
지난해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분단 65년 만에 남북 양정상이 군사분계선(MDL)에서 만나 함께 남측과 북측 땅을 밟은 것이다.
이후 남북 정상은 5월 26일 다시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가졌고, 마침내 9월 18일 문 대통령이 평양 땅을 밟았다. 그리고 평양 방문 이틀째인 19일, 문 대통령은 북한이 자랑하는 '능라도 5·1경기장'을 찾아 15만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나는 오늘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라고 연설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이어 남한 대통령으로서는 3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것이다. 남한 대통령이 평양 시민들을 상대로 직접 연설한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김 위원장도 "오늘 나와 문재인 대통령은 북남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의 여정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로 될 소중한 결실을 만들어냈습니다"라고 화답해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진전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남북정상간 평양선언문 발표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최종 협상을 조건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핵사찰을 허락하기로 합의했다"며 "매우 흥분된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정을 넘긴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축하하는 글을 올리며 그 역시 향후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만남과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는 여전히 정상 궤도에 들어서지 못하고 짧은 대화와 공전을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상호 교환하고 있다. 지난해 9월19일 남북정상회다 후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냉랭한 남북관계···北, 올해만 10차례 무력 도발, 원색적 비난도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흘렀으나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그 이전에 비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줄어들었으나 남한과 미국을 향한 미사일 개발 및 발사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올해 쏘아올린 대량살상 무기인 단거리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등의 무력도발은 10차례나 강행했다.
북한은 또 문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서도 입에 담지 못한 원색적 비난을 연이어 내놓았다. 특히 '통미봉남(通美封南)'로 해석되기는 하나 그동안 이어온 남북대화를 전면 부정하며 '협상을 해도 조미(북미)가 직접 하게 되는 만큼 남조선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어기장을 놓는가 하면 올해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강조한 '평화 경제'에 대해 '소대가리도 양천대소할 노릇'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9·19 평양선언 이후 상당기간 남북관계는 순항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열린 남북간 고위급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상당한 진전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철도·도로 협력, 산림협력, 보건의료 협력 등 경제적 측면에서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상호 기대감이 컸다.
특히 철도와 관련해선, 남북 공동조사를 실시한 후 상호 문제점을 보완해 개통하는 구체적 방안까지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2007년 12월 공동조사 때와 같이 큰 진전이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남북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 문제와 2020년 도쿄올림픽 공동참가 등 체육협력 등 분야별 논의도 이어갔다.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결정적인 계기는 2월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하노이에서 이렇다 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냉랭하게 서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후 북미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되었고, 남북관계 역시 오리무중 상태로 빠졌다.
이후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미국과 남측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화의 담장을 더욱 높게 쌓았고, 동맹관계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과 러시아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이들과의 동맹관계를 미국과 남측에 과시하기도 했다.
이로써 남북관계 개선과 단계별 비핵화 프로그램 협의,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선순환적 문제 해결을 주장했던 문 대통령의 구상과는 달리 북한은 다시 '통미봉남' 전략을 통해 미국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며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간 '친서 외교'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 앞에서 만난 남북미 정상들 (청와대)
◆ 남북관계는 북미관계 회복에 달려있어…연내 3차 북미정상 만날 가능성 있어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남북 대화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대북제재가 어느 정도 풀려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남측에 대해 이같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우리 정부에 대해 대북재제가 풀리도록 역할을 해 달라'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라는 해석이다.
사실 문 대통령으로서도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이 문제를 일부 해결이라도 해 볼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측 단독으로 진행하기에는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4월 백악관을 방문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 협상 방안을 논의했지만 양정상은 북핵 프로세스 관련 뚜렷한 시각차만 보인 채 큰 합의에 다다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이 실망보다는 큰 합의로 가기 위한 과정이고,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3차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해 줄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제안에 긍정적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허용 여부에 대해서 '지금은 올바른 시기(right time)가 아니지만, 올바른 시기가 되면 큰 지지(great support)를 보낼 것이라며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 이런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빅딜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돼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오사카 G20 참석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요청으로 6월말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 판문점을 방문하면서 김 위원장과의 '깜짝 회동'을 제안했고 이에 김 위원장이 응답하면서 북미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됐다.
또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차례 인편을 통해 '친서'를 보내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어느 정도 입장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 행정부내 '슈퍼 매파'로 불리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함으로써 김 위원장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는 추측도 낳게 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가 진행되면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남북관계도 재개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도 9월말이라도 당장 대화를 하자는 제안을 내 놓은 점도 북미가 조만간 실무회담을 통해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협상을 진행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이 열리면 남북 대화도 자연스럽게 복원되고,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 이행을 위한 고위급 회담도 열리게 됨으로써 남북 대화는 순조롭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미 대화가 곧바로 남북 대화 재개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현재 미국과 대화를 강조하고 있고, 남측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다음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대화를 적극 지지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 정부는 그 역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평화경제로 공동 번영의 미래를 당당하게 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촉진자'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힌 것으로 해석했다.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맞이해 문 대통령은 어떠한 메시지도 내 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 운전자·촉진자·중재자' 등 발언을 할 때마다 북한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미루어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한다.
문 대통령은 오는 22일 제74차 유엔총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으로 출발한다. 이 기간 중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예초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던 일정을 문 대통령 직접 참석으로 전격 수정했다. 그만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