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일보

검색

글자 크기조절

글자 크기가 적당하신가요?

[김낙회의 세금이야기]

세금의 의미…"세금은 국민주권의 원천"

조세일보 / | 2019.10.01 15:00

김낙회

세금은 우리 생활 속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소득에 대해 부과되는 소득세(근로소득세, 종합소득세, 법인세 등)가 있고, 소비에 대해 부과되는 소비세(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등), 그리고 자산에 대해 부과되는 재산세 등이 있다.

마음 한편으로는 이러한 세금을 왜 내야 하고, 얼마나 내야 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 또한 세금이다.

세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교과서적인 정의를 보면 세금은 '국가가 수입을 조달할 목적으로 특정한 개별적 보상을 급부하지 않고 사경제(국민)로부터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화폐 또는 재화'라고 한다. (1) 

그러나 이 말은 국민을 납세의무의대상으로 인식할 뿐 국가운영의 능동적인 주체라는 생각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을 받아들여 우리 헌법은 국민의 '납세의무'(헌법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와 '조세법률주의'(헌법 제59조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를 천명하고 있다. 국민은 주권자이자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세금을 내야 하지만 세금의 종류와 부담 수준은 대표를 통해 정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깊이 헤아려봐야 할 함의, 즉 국민을 주권자로 인식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는 헌법 정신은 1215년 영국에서 제정된 대헌장Magna Carta에서 비롯되었다. 대헌장은 왕이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을 공고히 다진 최초의 권리장전이다.

13세기 대헌장 시대의 영국은 봉건주의 국가였고 왕이 주권자로서 필요에 따라 세금을 걷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국민은 납세의무의 대상일 뿐 왕이 부과하는 세금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왕의 세금 부과에 대해 사상초유의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영국의 존 왕은 1199년 사자왕이라 불리던 형 리처드 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올랐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계속 패배하게 되자 전비 조달을 위해 존 왕이 부과하는 세금은 점차 늘어나, 1210년에는 2배로 인상되었고 1211년에는 3배로 증가했다. 이처럼 평시 수입의 두세 배에 달하는 세금이 부과(2)되자 영주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프랑스나 스페인 등 유럽 대륙의 봉건주의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영주의 권한이 강했던 영국에서 왕의 전제적인 통치에 반발하는 영주들의 반란이 일어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역사적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왕과 영주들 간에 과세권의 제한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여 전문 63조의 대합의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헌장이다.

여기에는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 병역면제세, '지원금Aids에 대해서는 왕국 전체회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헌장은 합의의 구속력이 약하고 내용 면에서도 구체성이 떨어져서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되었지만 조세법률주의가 최초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과세권의 행사에 국민적 동의를 요한다는 대헌장의 기본정신은 이후 여러 차례 역사적 사건을 거치면서 점차 구체화되었다. 크게는 1628년에 이루어진 권리청원(의회의 승인 없이는 국민들에게 과세를 할 수 없다)에 이어, 1689년에 일어난 명예혁명의 결과물인 권리장전(의회의 승인 없이는 과세할 수 없다)에서 비로소 조세법률주의가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헌장의 정신은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영국 정부가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차세(茶稅)를 부과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1773년 12월 16일, 차에 대한 세금 부과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보스턴 시민들이 배에 적재되어 있던 차 300상자를 바다에 빠뜨렸다. 일명 보스턴 차 사건The Boston Tea Party을 계기로 독립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미국민 스스로 과세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나타난 조세법률주의는 대헌장의 시각 또는 성격과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대헌장은 왕을 주권자로 인정하되 주권자의 과세권에 저항하며 납세자들의 동의를 요구하는 내용의 수동적인 관점이었다. 반면 독립선언문은 주권자가 국민이며 그 국민 또는 대표의 동의를 통해서만 과세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관점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독립국가가 된 미국의 입장에서 왕정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웠고, 따라서 국민들로 구성된 공화정 체제를 채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로 인해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내용을 규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세법률주의는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보다 적극성을 띠게 되었다. 프랑스혁명도 세금으로 촉발된 사건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지배계층이 누리던 과도한 세금특권이 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당시 세금 때문에 전체 인구의 10%는 거지가 되었고 20%는 거의 거지가 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3)

프랑스혁명 중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Citizen'이라고 표현된 인권선언서가 발표되었는데, 그 속에는 주권자가 국민이라는 내용과 함께 국민이 대표를 통하여 조세의 배분과 부과를 결정한다는 내용이 있다.

인권선언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3조. 모든 주권(국가권력)의 근본은 국민에게 있다. 어떤 단체나 어떤 개인도 명시적으로 국민에게서 유래하지 않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제13조. 공공의 권력의 유지와 행정에 필요한 경비를 위해 공동의 조세가 불가결하다. 그것은 모든 시민 간의 부담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분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제14조.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그 대표를 통하여 공공의 조세 필요성을 확인하여 그것을 자유롭게 승인하여 그 집행 절차를 따르고 또 그 배분, 부과, 징수와 기간을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4)

즉, 주권자로서 국민이 '동의'가 아닌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헌법에 담겨 있는 조세법률주의는 바로 이런 것이다.

단순히 과세권을 제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권자로서 스스로 세금의 부담과 배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세금이야말로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이 가장 실천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대표적인 상징인 것이다. 국민 모두 납세의무자인 동시에 납세의무를 결정하는 주권자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말이 조세법률주의다.

(1)곽태원, 「조세론」, 법문사, 2001, p52.
(2)문점식, 「역사 속 세금 이야기」, 세경사, 2012, p511.
(3)하노 벡, 알로이스 프린츠, 이지윤 옮김, 「세금전쟁(Zahlungsbebehl)」, 재승출판, 2016, p56.
(4)문점식, 「역사 속 세금 이야기」, 세경사, 2012, p532~p533

김낙회 저서 「세금의 모든 것」 -21세기북스


법무법인 율촌
김낙회 고문

▲한양대 행정학, 美버밍엄대 대학원(경영학 석사), 가천대 대학원(회계세무학 박사) ▲행시 27회 ▲재정경제부 세제실 소비세제과장·소득세제과장·조세정책과장, 기획재정부 세제실 조세기획관·조세정책관, 조세심판원장,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저작권자 ⓒ 조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화끈한 토픽·쏠솔한 정보 조세일보 페이스북 초대합니다.

주요기사

Copyright ⓒ Joseilbo.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