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회장, 선제 대응과 직원들 마음 얻어 선방
캐스팅보트 쥔 국민연금, 일반주주들 경영진 힘 실어 줄 듯
조현아 주주연합측 추가로 지분 매집하며 장기전 태세
한진칼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반기를 든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해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는 가운데 다음 달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 체제를 무너뜨리기에는 쉽지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조현아 주주연합은 추가로 지분을 매집하고 후일을 기약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원태 회장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반기로 난기류를 만났으나 선제대응을 잘 한데다 직원들의 호응으로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먼저, 한진그룹의 노동조합과 퇴직직원, 사우회 등 직원그룹은 현 항공업의 위기 상황에서 조원태 회장의 지지를 선언한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땅콩회항 사건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망신살을 뻗힌 장본인으로 고 조양호 회장의 유훈에도 불구하고 외부와 결탁하여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며 “대한항공이라는 기업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재벌가의 갑질에 대한 국민적인 공분을 크게 산 장본인”이라며 반대의사를 명확히 했다.
게다가 연합세력이 경영진 후보로 내세운 김치환 전 상무가 오히려 연합세력에 반대하며 조 회장 편으로 돌아서 연합세력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그는 입장문에서 “3자 연합이 주장하는 주주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며, 본인의 순수한 의도와 너무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진그룹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오히려 동료 후배들로 구성된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진그룹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대화합 함으로써 한진그룹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도록 힘써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연합세력이 내세운 전문경영인 김신배 전 SK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대해 훌륭한 경영인이지만 현재 위기상황을 타개하기에는 항공업에 대한 전문성이 대체로 부족한 명망가들”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 더해져 유리한 국면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이사회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여 이사회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조현아 전 부사장이 주력했던 호텔·레저 사업에 관련된 유휴부지와 지분을 모두 정리해서 유동성 확보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부터 연합세력의 주축인 KCGI가 꾸준히 문제제기한 경영합리화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KCGI가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잡고 경영권 확보에 나선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KCGI에 대한 경계심리가 팽배해 지고 있다. KCGI는 2019년 8월에 적극적인 경영참여 목적으로 조성된 사모펀드로 지난 해 9월부터 한진칼의 주식을 사모아 16.7%의 의결권 주식을 확보했다.
일반적으로 행동주의 사모펀드는 이상적인 지배구조를 만들어 기업의 의사결정구조를 합리화함으로써 기업가치를 높여 투자이익을 추구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면에는 지배구조를 구실로 상장사의 경영권 찬탈과 고액의 배당을 요구한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과거 먹튀 논란이 있었던 론스타를 위시해 지난해까지 현대차그룹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엘리엇펀드를 연상시킨다. 최근에는 기업사냥꾼과 결탁하고 펀드의 투자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거액의 투자손실을 일으킨 라임펀드 등 사모펀드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이 팽배해 있다.
더욱이 KCGI의 대표는 보유주식의 일부를 적정한 수준에서 주식담보대출을 하고 있어 최근 일부에서 제기한 한진칼 주식의 담보대출에 대해 별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펀드전문가 A씨는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투자자가 투자한 자금으로 매입한 주식인데 이를 투자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식담보대출을 받는 것은 투자자의 투자위험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현아 연합세력에 참여한 반도건설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최근 반도건설 권 회장은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한진칼의 주식이 난데없이 등장한 배경에 대하여 여태까지 건설업 본업 이외에 다른 사업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권회장의 의사결정에 궁금증을 더 하고 있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다음 달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의 이사연임 안건 투표로 정해진다. 현재 조원태 회장측이 약 34%, 조현아 측이 약 32%의 의결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약 34%는 국민연금 3.5%, 카카오 1% 그 외에 일반주주가 약 30%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투자자는 고액의 배당에 관심이 많지만 기관투자자들은 투자자금의 성격에 따라 기업가치에 더 방점을 두기도 한다” 며 “그러나 현재와 같은 항공업 위기상황에서 고액의 배당을 원하는 주주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대한항공은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를 늘리는 등 네크워킹을 강화하고 수익성 노선 위주로 시급히 전환하여 매출과 수익성을 보강해야 한다”고 진단하며 “현 시점에서 행동주의 사모펀드, 반도건설과 결탁한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권 다툼은 현 위기상황 타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명분도 없다”고 분석했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결국에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은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최선책은 아니지만 조원태 회장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경영권분쟁에서 연합세력이 실패하게 되면 KCGI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펀드전문가의 지적이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주가는 작년 일본문제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한진칼은 KCGI의 매수와 경영권 분쟁으로 오히려 주가는 계속 상승해 왔다.
펀드매니저 L씨는 “이번 경영권 분쟁이 정리되면 주가는 현재 항공업 위기상황이 반영되어 상당한 하락이 예상된다”며 “이 경우 KCGI는 원금손실과 더불어 주식담보대출 상환 등 리스크가 증가할 것으로 보여 펀드 투자자들의 리스크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달 한진칼의 주총에서 국민연금과 일반주주가 어느 편을 지지 하느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재계관계자들은 국민연금과 일반주주들도 회사직원들의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정기주총이 싸움의 끝이 아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주주연합 소속인 반도건설이 최근 한진칼 지분 4.59%를 추가 매집했다. 이번에 매집한 지분은 정기주주총회 의결권이 없는 만큼 향후 임시주총 등 장기전을 내다본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주주연합 측인 KCGI 역시 1000억원 규모 추가 자금 모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의 지분 경쟁에서 조원태 한진칼 회장 측과 조 전 부사장 측 우호 지분율은 각각 38.25%와 36.65%로 박빙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