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통신 "김여정, 모든 연락선 폐기 지시...대적사업 전환 강조"
金, 경고한 3단계 중 1단계 시행...9.19 합의 파기·군사도발 우려도
'北, 미국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수준 요구하는 것' 해석도 나와
북한이 9일 정오부터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해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 채널을 완전히 차단·폐기한다고 밝혔다. 또 대남 업무를 남측을 적(敵)으로 규정하는 '대적 사업'으로 바꾸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전날 열린 사업총화회의에서 "2020년 6월 9일 낮 12시부터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할 것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석한 김여정(사진=더팩트)
지난달 31일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경고 담화에 이어 점차 비난 수위를 높였던 북한이 결국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를 넘어 모든 소통채널의 차단을 공표함으로써 교착 상태인 남북관계가 더욱 중대 기로에 놓였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6월 9일 12시부터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 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지난 8일 대남사업 부서들이 참여하는 사업총화회의가 열렸으며,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이런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이 회의에서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면서 "우선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히 차단해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통신은 또 "남조선당국은 저들의 중대한 책임을 너절한 간판을 들고 어쩔수 없다는 듯 회피하면서 쓰레기들의 반공화국적대행위를 묵인하여 북남관계를 파국적인 종착점에로 몰아왔다"면서 "그러지 않아도 계산할 것이 많은 남조선당국의 이러한 배신적이고 교활한 처사에 전체 우리 인민은 분노한다"고 했다.
나아가 "남조선당국의 무맥한 처사와 묵인 하에 감히 최고존엄을 건드리며 전체 인민의 신성한 정신적 핵을 우롱하였으며 결국 전체 인민을 적대시하였다"며 "다른 문제도 아닌 그 문제에서만은 용서나 기회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최고존엄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목숨을 내대고 사수할 것"이라면서 "지켜보면 볼수록 환멸만 자아내는 남조선당국과 더 이상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모든 연락 차단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탈북민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면서 남한 당국에 응분의 조처를 하지 않을 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업지구 완전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경고한 바 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이어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 단절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던 북한은 이날 모든 통신연락망 차단을 통지함에 따라 남북관계 단절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다음 수순으로 적대행위 중지를 명기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대남 군사도발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정대진 교수는 이날 북한의 이번 조치에 대해 지난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의 세 가지 조치인 연락사무소 폐지, 개성공단 완전철수, 군사합의 파기의 1단계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진단했다.
정 교수는 북한의 다음 조치로 '개성공단 완전철수를 위한 자산몰수가 임박'했다고도 내다봤다.
그러면서 "김여정 제1부부장이 중심에 서서 단행중인 이 조치들은 결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이라고 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어 "과거 행태를 놓고 봤을 때 북한은 최고존엄을 훼손한 대북전단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유감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다음 단계로 가지 않도록 대화하자고 우리가 제안하고 이걸 못이기는 척 받는 그림을 내심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2000년)6·15 남북공동성명, (1972년)7·4 남북공동성명 그리고 길게 봤을 때 8·15 광복절까지의 이벤트 시점에 우리가 개성공단, 금강산 등에 대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북이 원하는 수준으로 협력을 논하는 깜짝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이라도 원하는 모양새"라고도 해석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북한이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개성공단 완전철수를 볼모로 우리를 더욱 압박하는 한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대북전단 유감표명이라는 그냥 말로 하면 되는 낮은 문턱을 설정했다"며 "이번에도 대화가 되지 않으면 남북단절은 결국 남측의 책임이라고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우리의 공개적인 대화제의에는 '달타령', '가을뻐꾸기소리'라며 계속 거부할 것이고 실질적인 대화조건을 담은 비공개대북특사 등을 파견할 때 북도 우리와의 대화에 복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북측을 향해서는 "미국 대선이후 본격 논의될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회담을 위한 진지한 준비에 나서야할 것"이라며 "유아적인 자세로 떼쓰기를 계속할 경우 정말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북한의 이런 행동을 대화의 신호로 보는 점에 대해 '북한 상황이 그럴 겨를이 없어 대화보다는 오히려 경제발전에 올인 할 수 있도록 안보우려를 만들지 말라는 신호'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북한의 조치에 대해 "단순히 삐라 때문에 저러는 것은 아닐 거"라며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단 살포에 대한 엄청난 위기감이나 공포감이라기보다는 최고존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불충이면서 오히려 남쪽을 향해서는 엄포"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단순히 삐라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남쪽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표출할 명분을 찾고 있던 차에 삐라가 걸려든 것"이라며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삐라문제 해결한다고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북한의 이러한 행동을 대화의 신호'라고 보는 점에 대해선 "북한은 지금 그럴 겨를이 없다. 대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발전에 올인 할 수 있도록 안보우려를 만들지 말아달라는 것이라고 본다"면서 "되지도 않는 북미관계 중재니 제재눈치 보며 주저주저하는 지원협력 타령하지 말고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할 테니 방해만 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대북 제재에 예상치 못한 코로나까지 겹친 상황에서 정면돌파전을 내세워 북한 주민을 끌고 가자면 지금 이러한 엄혹한 상황과 사태가 누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면서 "내부적 결속용이 크고 대외적으로도 협상이나 대화의 신호라기보다 자신들은 굴복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것이라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북한의 이번 조치가 현실화된다는 것은 곧 남북관계가 4.27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개와 정상간 직통전화는 4.27의 가시적인 성과이자 대표적인 상징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정상간 직통전화는 그간 두정상간 신뢰의 증표라는 점에서 폐기는 단순히 남북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인간적 관계마저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다음 조치 가능성'에 대해선 "김여정 제1부부장이 언급한 3가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그리고 개성공업지구의 완전철거 순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문제는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그냥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북한이 통전부 대변인 담화에서 밝힌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을 벌려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우리도 남측이 몹시 피로해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차 시달리게 해주려고 한다'고 언급한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해결방안에 대해선 "답답하다. 그저 안보의 관점에서 단기적인 리스크 회피나 차단이 아니라 평화의 관점에서 멀리보고 선제적 조치를 통한 리스크 관리가 중심이 되길 바랄 뿐"이라며 "제발 이 순간에도 뭔가 이벤트를 만들려고 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용기"라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