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공임대 11만4000가구 수도권 집중 공급
다세대주택 매입, 무주택자 최장 6년 거주 가능
전문가들 "노무현 정부 공공임대정책 계승해야"
◆…정부는 지난달 19일 앞으로 2년간 전세 위주의 공공임대 11만4000가구를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공급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분양으로 전환하는 방식보다 공공 임대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진=연합뉴스)
한채에 수억원씩 하는 주택을 수백만호 공급해 봐야 신혼부부나 저소득층에겐 그림의 떡이다. 대출해서 집을 장만하면 원리금 갚기도 어렵다. 가격이 하락하면 심각한 문제가 초래되고, 가격이 오르더라도 다른 집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에 은행대출을 갚지 않는 한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 결국, 서민들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사유로 고통만 받을뿐이다.
"대출을 받아도 서울의 아파트는 살 엄두가 나지 않아요. 최소 10억원이 훌쩍 넘어 다른 세상의 얘기 같습니다. 선진국과 같이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국가에서 마련해준 주택에서 살면서 돈을 모으는 방법이 안착됐으면 합니다" (서울 거주 30대 직장인 A씨)
◆ 노태우 정부, 공공임대 시작…김영삼 정부 '민간임대'
공공임대주택은 L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국가 또는 지자체의 재정이나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른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아 임대 또는 임대한 후 분양전환을 할 목적으로 건설, 매입 또는 임차해 공급하는 주택이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은 1989년 영구임대주택을 시작으로 본격 도입됐다. 이후 최빈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은 1993년 재정적인 문제로 중단되고 2002년 매입임대주택이 도입됐다.
최근 공공임대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과거 노태우 정부 때부터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시행돼왔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년간 41만8000호의 공공임대를 공급했고, 그중 45.3%인 18만7000호를 최저소득층에 공급했다. 토지+자유연구소는 지난해 4월 발표한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공공임대주택 정책 구상' 보고서를 통해 "노태우 정부의 공공임대 정책은 주거복지의 성격보다는 체제안정 성격이 강하지만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초석을 놓았고, 영구임대주택을 보급하기 시작한 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는 공공임대보다 '민간임대'에 초점을 맞춘 임대주택 공급이 이뤄졌다. 김영삼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민간건설업자의 임대주택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한 결과, 임대주택 물량 중 75%가 민간임대주택이었다. 또 50년의 장기임대주택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5년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공공임대주택에 역점을 둬 전체 임대주택 공급 중 92.5%인 38만7010호를 공급했다. 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은 극소수에 불과해 공공임대의 원래 목적인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성에 역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 '저소득층 주거안정성' 강화
외환위기 이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저소득층의 사회안전망 구축의 일환으로 임대료를 시중 가격의 60~70%로 낮추는 30년 장기 국민임대주택을 도입했다. 특히 전체 공공임대주택의 24.3%를 저소득층(1~4분위)의 주거안정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반면 영구임대주택 공급은 중지했다. 토지+자유연구소는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노력한 정부"라며 "주거복지라는 명확한 철학을 국민임대주택이라는 정책수단으로 달성하고자 했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정부도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성' 강화에 공을 들였다. 2003년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장기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한 결과, 역대 정부 중 최다인 56만1873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다. 특히 전체 공공임대주택 물량의 85.9%를 저소득층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에 할당할 만큼 서민의 주거복지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 밖에도 2004년 기존주택을 매입하는 임대주택을 도입하고 장기전세주택, 10년 임대 후 분양주택 모델을 선택해 공급했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 공공임대 비중 축소
반면 이명박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부동산경기 활성화'의 방편으로 삼았다. 이명박 정부는 1993년 이후 중단됐던 영구임대주택을 보금자리주택 건설계획을 통해 추진했고, 그 결과 영구임대주택 2만3583호를 공급했다. 또 단기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임대주택을 노무현 정부보다 두 배 이상 많이 제공해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입지가 좋은 분양형 보금자리주택이 '로또 주택'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저소득층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비중을 축소했다. 당시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주택을 주로 공급해 30년 이상 장기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이 총 공급량의 14%에 그쳤다. 반면 10년 이하의 단기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은 24.3%로 노무현 정부(13.8%)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에 대해 토지+자유연구소는 "박근혜 정부는 민간기업과 중상층에 특혜를 준 '뉴스테이' 정책을 비롯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성보다 중소득층의 자가 소유 지원에 대해 주로 집중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지적했다.
◆ 무주택가구 공공임대 공급 확대해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서 지난 3일 열린 LH 공공 전세주택 미리보기 행사에서 서창원 한국토지주택공사 주거복지본부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주택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에 역점을 둔 과거 노무현 정부의 공공임대정책이 서민 주거 복지의 원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고, 현 정부도 저소득층 우선 주거복지 대책을 계승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토지+자유연구소는 "노무현 정부가 투기차단대책과 저소득층 최우선 공공임대주택 정책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을 최우선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성이 획기적으로 제고되고, 비주택거주 가구의 종식도 가능해진다"며 "저소득층의 주거비를 경감시키는 정책과 함께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정부의 재정출자 비중을 높이고 기금 이자를 낮추면 저소득층의 공공임대 거주비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취지다.
이어 공공임대 확충과 더불어 주택의 투기를 차단해 중소득층 이상의 무주택 가구의 자가 보유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 주택의 3분의1 이하 수준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면 투기가 차단되기 때문에 시장에 실수요만 등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 '공공분양'보다 '공공임대' 초점 맞춰야
한편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의 방식으로 '공공분양'보다 '공공임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L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지은 임대아파트를 분양해 그 지역의 지대가 올라가면 시세 차익을 남긴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분양형 보금자리주택'을 보급해 이른바 '로또 주택'이라는 비판적인 여론이 촉발되기도 했다. 실제로 2017년 SH공사 도시연구원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분양 전환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주변 집값을 부추겨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일부 국회의원이 재건축 대상 주공아파트를 보유하면서 이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지난 7월 방영된 MBC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소유한 서울 반포주공1단지 아파트는 2014년 재건축 전 22억원이었던 공시지가가 현재 45억원에 달한다. 또 같은 당의 윤영석 의원이 소유한 개포주공2단지 아파트는 9억1000만원에서 28억원으로 폭등했고, 이헌승 의원의 신반포한신3차 아파트도 10억원에서 27억원으로 뛰었다.
이같이 분양을 통해 시세차익을 얻는 현재 부동산시장의 상황에 대해 국민의 여론도 싸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일보-엠브레인퍼블릭 여론조사에서도 공공부지 주택 공급 방식으로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4.8%)이 분양보다 '임대'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변의 집값에 따라 임대아파트의 분양가도 오르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임대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토지수용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데 이를 민간에 분양하는 것은 공공임대의 정책 취지에 반한다"며 "특별공급(특공)이 로또가 되는 문화는 사라져야 하지 않겠나. 무주택자의 불만이 폭발적인 수준이라 분양보다 임대의 방식으로 공공부지의 주택을 공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앞으로 2년간 전세 위주의 공공임대 11만4000가구를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공급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전세 수요가 많은 아파트보다 다세대 주택을 주로 매입해 집을 구하지 못하는 수요자에게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공전세'는 수도권의 상가와 오피스, 호텔 등 비주택을 개조해 2022년까지 1만8000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서울은 5400가구가 이에 해당하고, 수도권까지 넓히면 1만3000가구다.
특히 이번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공공전세'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다세대와 오피스텔 등을 매입하면 무주택자면 누구나 들어와 최장 6년간 거주할 수 있어 새로운 형태의 공공임대주택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기존 다세대 주택을 매입하는 것과 더불어 신규 주택을 LH가 사들여 공공임대로 공급하는 '매입약정'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한국 공공임대 재고율, OECD 국가 10위
이러한 정부의 제안이 나온 배경에는 국내의 공공임대 보급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인식이 깔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임대 재고는 2018년 기준 약 157만호로, 전체 주택 수 2082만호의 7.5% 수준이다. 더구나 이 통계에는 민간 보유 전세임대 26만5000호와 단기공공임대주택 27만4000호도 포함돼 장기임대주택만 따져봤을 때는 실제 재고율은 5.1%로 더 낮아진다. 기준을 소유권으로 바꾸면 재고율이 8.9%로 다소 높아지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0위 정도에 머문다.
복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국가와 비교해서도 공공임대의 비율은 낮은 수준이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에 해당하는 '사회주택'의 비율이 32%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덴마크도 공공임대비율이 21%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에 부동산 편중 문제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주택 확대 방안이 부동산 서민 주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정부가 이번에 들고나온 '공공임대 확대 방안'은 일부 소수의 부유층에 쏠려 있는 주택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 공공임대 확대 '긍정적' 여론 87.2%
대부분의 국민들도 공공임대 확대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경기, 6대 광역시 거주 만 20~69세 남녀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87.2%(매우 긍정 30.7%+긍정 56.5%)로 '부정적' 응답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웹 조사 방식으로 실시됐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토지공개념 특별취재팀 : 홍준표·염재중·염정우·태기원·강대경 기자]
※ 본 기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