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기…산유국 감산에도 국제유가 상승 ‘감내’ 가능 판단
부동산PR 리스크 관리…금융부실 위험 낮출 필요성 부각
중국리오프닝에 유가 변동성 확대 가능성…국내 물가 ‘불안요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제공
한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은 본부에서 금통위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2월 기준금리 동결에 이은 두 번 연속 동결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스위스 2위 은행인 크레딧스위스(Credit Suisse, CS)은행의 유동성 위기 부각 등 영향으로 글로벌 금융불안이 확산됐다. 이에 시장에서는 미 연준의 긴축기조가 약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증가했다.
대내적으로는 SVB, CS 사태가 국내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는 있지만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확산되고 있어 기준금리 인상 여부와 인상 폭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돼왔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국내 물가가 상당히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한은이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2%로 1월 5.2%, 2월 4.8%에 이어 3개월 연속 둔화 흐름을 이어갔다. 한은은 지난달 4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중 목표수준(2%)을 웃도는 오름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올해 중반까지 지난해 큰 폭 상승에 따른 기저효과의 영향으로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은 "OPEC+의 석유 감산 결정으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확대되고 중국 리오프닝 영향에 유가가 오를 수도 있어 국내 물가 불안요소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금통위는 그 정도는 감내 가능하다고 판단해 동결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금통위는 또한 비은행권 중심으로 늘고 있는 부동산PR 리스크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에 의하면 작년 9월말 비은행권 전체(농협, 수협, 신협 등 상호금융 포함, 새마을금고 제외)의 부동산 PF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는 115조5000억원으로 이 중 대출은 91조2000억원, 유동화증권 채무보증은 24조3000억원이었다.
김 실장은 "국내 금융시장은 부동산RF 시장 중심으로 많이 불안해졌다. 미국의 금융불안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걱정해야 한다. 금통위원들은 이런 이유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가 이미 벌어졌지만 추가적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달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는 정책금리를 시장예상치에 부합하는 기준금리 0.25%포인트(p) 인상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는 상단기준으로 1.50%p로 확대됐다.
김 실장은 "한은은 금리격차가 벌어진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외국인 자금 유출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외국인 자금유출보다는 국내 금융부실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미국 금리가 추가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낮아진 것도 금통위원들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전문가 일부는 22년 만에 최대폭으로 벌어진 기준금리 차로 인해 국내 시장에서의 자본유출이 심화될 수 있고 원·달러 환율 변동성 역시 커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 실장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행보가 추가적으로 남아있고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가 추가적으로 벌어질 경우에는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면서 "중국의 리오프닝,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합의로 국제유가, 원자재 가격 반등으로 인해 수입물가가 상승하면 국내 물가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강달러 현상도 불안요인"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은은 지난달 '금융안정 상황' 기자설명회에서 "대규모 외화자금 유출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국내 금융기관은 대체로 외화자금 여유액을 보유하고 있어 감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환율은 한미간 금리차에 기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