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예정처, '기후위기 관련 글로벌 통상이슈 점검' 보고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탄소 누출(Carbon Leakage,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이 탄소 가격이 낮은 역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현상)'을 방지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하고,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추진하며 통상장벽을 높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퍼지면서, 공정한 무역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명분에서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상당 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의 특성상 주요 수출국이 무역장벽을 높이면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이에 한국도 EU와 같이 기후정책 관련 법과 제도를 재설계하거나, '그린전환' 관련 통상이슈에 취약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주요국의 탄소무역장벽 도입은 제조업 비중이 큰 국내 수출기업들의 부담을 가중키시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그린전환을 위해 우리나라도 EU와 같이 기후정책 관련 법과 제도를 재설계하는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진은 사진은 2021년 7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탄소배출 감축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20일 내놓은 '기후위기 관련 2023년 글로벌 통상이슈 점검' 보고서를 통해 "국내기업은 중간재 수출을 중심으로 저비용·고효율성이 극대화된 글로벌 분업체계에서 성장했기에 미국·유럽 중심의 탄소무역장벽 도입은 큰 부담"이라며 "특히 탄소배출량이 많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분야의 국내기업 부담이 늘 것"이라고 했다.
탄소 무역장벽이 높아진데는 EU의 '탄소세'를 들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올해 10월부터 CBAM를 도입, 역외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 EU와 동일한 탄소배출 규제를 적용하고 그 차이를 수입가격에 반영한다. 이런 과정에서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전기, 비료 등 온실가스 배출 산업을 대상으로 EU로 수출하는 역외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인증서를 요구받는다. 예정처는 "CBAM 관련한 인증서 발행비용으로 한국 수출기업의 이익감소·매출감소가 예상된다"며 "약 2.7%의 추가 관세가 부과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 것"이라고 봤다.
미국에서는 내년부터 12개 수입품(화석연료,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등)에 1톤당 55달러를 매기는 '청정경쟁법(CCA)'이 발의된 상태다. EU와는 달리 일부 최빈국의 수입은 면제, 수입국의 정책수준(활동)에 따른 면제 등 제도 시행에 유연성을 두고 있다.
예정처는 특히 "기후위기 대응 핵심산업 육성을 위한 각국 정부의 지원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IRA를 꼽을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 전략산업에 대한 생산세액 공제·청정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것인데, 2030년까지 총 3700억 달러 규모의 재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EU도 핵심원자재법(CRMA) 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CRMA는 ①2030년까지 '단일 제3국'의 원자재 의존도를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고 ②EU 역내 채굴은 10%, 제련·정제는 40%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둔다. IRA처럼 역외 기업을 명시적으로 차별하는 조항은 없으나, 역내 대기업 공급망 자체감사 등의 새로운 부담 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예정처는 탄소중립산업법(NZIA)과 한시적 보조금 규제 완화 정책을 언급하며 "친환경 산업에 대한 규제 간소화 및 기술개발 지원을 통해 EU 역내 생산능력 확대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한국도 기후정책 관련한 법과 제도 재설계해야"
예정처는 "EU의 '핏포55(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 목표)'는 탄소중립을 향한 각종 정책과 지침, 입법안의 종합본으로서 가격정책, 목표 강화 규정과 지원 수단을 통해 경제 전반을 연계해서 지원한다"며 "지속가능한 그린전환을 위해 우리나라도 EU와 같이 기후정책 관련 법과 제도를 재설계하는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린전환 관련 통상이슈에 취약한 중소기업 등을 보호하는 정책도 필요하단 목소리다. 예정처는 "청정에너지 확보 및 그린전환을 위한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그린전환 시 없어질 일자리·에너지 빈곤층·영세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는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EU CBAM 등의 시행에 따른 탄소배출 측정·점검·보고에 미흡한 중소기업의 대응을 지원하고, 녹색기술 투자 지원을 통해 장기적으로 친환경 역량을 가진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