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년… '반지성주의'를 회고함

'공정과 상식'의 화신으로 검찰총장에서 단숨에 대통령에 오른 것도 한국 정치사의 신기원으로 기록될 일이지만, 당선 이후로도 역대급(?) 활동으로 1년을 보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많은 언론들이 윤 대통령의 1년을 돌아보며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등 각 분야별로 앞다퉈 평가를 내놓고 있다.

상당수 언론에서 비판적인 시각과 우려의 시선으로, 혹은 부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는 마당에 비판적인 언사를 더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럼에도 양약고구 충언역이(良藥苦口 忠言逆耳)라 했으니 한마디 거들 뿐이다.

■ 윤 정부 1년 돌아보며, '반지성주의'가 떠오른 이유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한 바 있다.

다소 생뚱맞은 반지성주의가 왜 나왔을까 싶지만,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민주주의를 "합리주의와 지성주의가 지탱한다"고 설명하면서, 민주주의 위기를 헤쳐 나갈 힘을 "국민들과 세계 시민과 힘을 합쳐 헤쳐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의 집권 1년에서 몇 가지 떠오르는 장면들은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에 근거하기보다는 '반지성주의'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윤석열차'라는 풍자 만화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다.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그 풍자에는 권력자를 향한 일반 서민의 시각에서 함축적으로 전달하려는 (비판적) 메시지가 담겨있고, 그런 메시지를 통해 소통과 비판이라는 순기능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왕(王)의 존엄에 대항해 봉건시대의 백성들도 풍자를 통해 권력자들을 비판하고, 불만을 해소하기도 했다.

하물며 시민의 투표권으로 대표를 뽑고 민주적 정당성을 위임하는 국민(시민)국가 시대, 주권의 대리인으로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표징으로서 권력자에 대한 풍자는 국민의 자연스런 권리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도를 넘는 표현은 '명예훼손'으로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것 또한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에 맡기는 것이 선행돼야 미덕이다.

시민의 권리가 재산권과 신체의 자유권에서 노동권을 거쳐 사회권과 환경권으로까지 확대된 요즘이다.

예술 표현의 자유 또는 사상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시장이론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되든, 받아들여지든 결정돼야 한다는 점과 풍자의 순기능적 측면이 두텁게 보호돼야 한다는 점을 더해보면 '윤석열차'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지성주의'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반지성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열차 객석에 구둣발이라니.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2022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차'라는 제목으로 윤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 작품이 경기도지사 상인 금상을 수여받고 전시된 것에 엄중 경고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인 2022년 2월 18일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습니다'는 글을 올린 바 있고, 후보 시절 방송 프로그램 SNL '주 기자가 간다'는 코너에 출연해서는 주현영(SNL '주 기자') 배우가 "SNL이 자유롭게 정치 풍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건가요?"라고 묻자,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SNL의 권리입니다"라고 답변하면서 정치풍자가 권리라고 추켜세운 바 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더욱 씁쓸한 생각이 든다.

■ 언론은 국익을 해치는 존재인가?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해주면(고) 바이든이(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냐?"

윤 대통령의 22년 9월 미국 방문 당시 한 위 발언은 소위 '바이든·날리면' 논란으로 논란이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당시 상당수 국민들은 청취력 테스트를 하는 것이냐며 부정적인 여론을 보였다.

이후 윤 대통령을 대신해 외교부에서 관련 보도를 한 MBC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고, 언중위에서 합의를 보지 못해 결국 이 논란은 법정으로까지 가게됐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후 11월 동남아 순방을 앞두고 MBC 기자들에게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된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해 언론 길들이기, 재갈물리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 재갈물리기는 이후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회고록에서 밝힌 역술인 천공의 대통실 관저 이전과 관련한 개입 의혹에서도 재연됐다.

천공은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유승민 당시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향해 캐묻기도 했던 민감한 사안이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후보 시절부터 계속해서 역술인과의 관계가 도마에 오르면서 국정 운영의 신뢰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한편 부승찬 전 대변인은 자신의 회고록 '권력과 안보'에서 김용현 경호처장과 천공이 육군 참모총장 공관과 서울사무소를 답사했다는 내용을 공관을 관리하던 부사관이 남영신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보고했다고 기록했다.

대통령실은 관련 논란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 2명과 부승찬 전 대변인, 이를 방송에 처음 폭로한 것으로 알려진 김종대 전 의원을 고발 조치했다.

특히 언론사가 아닌 기자를 직접 타깃으로 한 것에 대해서도 그 의도가 취재를 막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 뫼비우스 띠같은 법치주의 세계관의 협소함 벗어나야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두드러진 집단이 검찰(사)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실 인사에서부터 내각과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국정원까지 권력기관 요직에 소위 '윤석열 사단'이라 불리는 검사들이 포진해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규범인 헌법에서는 법치주의와 함께 국가 운영 원리로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규정들이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인사의 난맥상에 대한 세간의 지적에 대해 대통령실이 들고 나온 대응은 "법률에 위반된 사항이 있나요?"라며 '법(률) 위반' 여부를 기준삼아 국민들의 비판을 잠재워 왔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제기된 여러 비판과 정무적 대응이 필요한 업무에서, '법치주의'라니…,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부조화, 법치주의 세계관에 갇힌 뫼비우스 띠같은 정부의 세계관이 오늘날 국정 난맥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윤 대통령은 자주, 헌법과 법률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위 원칙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공정과 상식의 화신이었던 강직한 검사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몰아내고, 새로운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나서려는 유승민 전 의원을 주저 앉히고, 나경원 전 의원의 출마 포기를 종용하고, 안철수 의원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사실상 당 대표로 나서지 말라는 메시지를 서슴없이 보낸 것도 대통령실, 나아가서는 윤 대통의 의중(윤심)이 아닐까 의심하는 게 세간의 평가다.

김기현 당 대표 체제에서 불거진 이진복 정무수석의 태영호 최고위원의 공천 압박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여기에 야당 대표와 1년 가까이 마주앉지 않은 상황도 의회주의라는 민주주의 운영의 기본에 비춰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다.

윤 대통령의 또는 대통령실의 당무개입이 과도해 보이고, 야당 대표와는 1년 가까이 회동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 원리로 작동되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리 만무하다.

검찰 만능주의에서 벗어난 인사와 법치주의 세계관을 벗어난 정치 회복이 없다면 남은 임기 동안 국정 운영의 난맥상은 더 심화하지 않을까.

최근 한·일,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외교 분야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행보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시대의 사표 역할을 하는 교수 집단과 시대의 선지자로 우리 사회의 등불 역할을 하는 신부와 목사, 스님 등 종교계의 시국선언은 윤석열 정부 1년에 대해 경고등을 밝히고 있다.

나경원 전 의원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정당은 자유 민주주의 정치의 뿌리"이다. "포용·존중을 포기하지 마라"

왠지 윤 대통령의 당무개입에 대한, 또는 헌법 가치인 '정당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읽힌다.

인사부터, 외교 정책과 당정과 야당을 대하는 국내 정치까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지혜를 바라는 게 어려운 일일까.

윤석열 정부 1년에 즈음한 잡감(雜感), 넋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