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 개선 의견서' 제출
5년간 기술유출 93건…법정 가도 88%는 무죄·집행유예
"낮은 처벌수준, 법정형 대비 약한 양형기준도 일부 기여"
◆…전국경제인연합회를 7일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 개선에 관한 의견서'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하며 "기술유출은 국가경쟁력을 훼손하는 중범죄로, 양형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진 연합뉴스)
반도체, 이차전지, 자율주행차 등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의 해외 유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첨단기술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해외로의 기술유출을 막는 건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이른바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주요 경쟁국에서는 관련 법을 개정하거나 양형기준을 피해액에 따라 가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한국도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 상향된 양형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8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 개선에 관한 의견서'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자료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은 총 93건이었다. 월 1.6개씩 유출된 셈이다. 하지만 기술유출 범죄를 적발하더라도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지극히 낮다. 전경련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총 33건)을 검토한 결과, 기술유출 사건 중 실형(징역형)이 선고된 비율은 6.1%에 불과하다. 60.6%는 무죄를 받았다. 집행유예 선고도 27.2%에 달한다.
전경련은 처벌수준이 낮은 이유로 ①법정형 대비 약한 수준의 양형기준 ②악용될 소지가 크고 불합리한 형의 감경요소를 꼽았다. 현재 기술 보호 관련 대표 법률인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선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을 병과하고, 그 외 산업기술을 해외유출한 경우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대만은 기술유출시 간첩죄로…미국선 최대 405개월 징역형
◆…(자료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과 최대 경쟁관계에 이는 대만은 작년 국가안전법 개정을 통해 군사·정치영역이 아닌 경제·산업분야 기술유출도 간첩행위에 포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가핵심기술을 중국, 홍콩, 마카오 등 해외에 유출하면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징역과 대만달러 500만 위안~1억 위안(약 4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기술대국인 미국은 연방 양형기준을 통해 피해액에 따라 범죄등급을 조정하고 형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술유출은 기본적으로 6등급의 범죄에 해당, 0~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할 수 있고, 이 경우 188개월에서 최대 405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전경련은 "만약 우리나라 국외유출 1건당 피해액(약 2억3000만불)에 미국의 연방 양형기준을 적용한다면, 32등급 범죄행위에 해당해 121개월에서 26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했다.
"법과 괴리 큰 양형기준 상향, 불합리한 감경요소 재검토 필요"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범죄에 대해 처벌이 낮은 수준에 그친 이유로 법정형에 비해 낮은 양형기준이 지목된다. 법원이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 실제 판결을 내릴 때는 지식재산권범죄 양형기준의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적용하는데, 해외유출 시 기본 징역형은 1년~3년 6개월이다. 가중사유를 반영해도 최대 형량은 6년에 그친다.
전경련은 "이와 같은 형량이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의 처벌규정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면서 ①양형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②국가핵심기술 등의 유출에 대해 일반적인 영업비밀과 별도의 양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행 양형기준 감경요소도 해외유출에 대한 실제 처벌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단 목소리다. 전문가·관리자가 직무상의 지위를 이용해 행하는 화이트칼라 범죄의 특성상 형의 감경요소를 악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판결문 60건에 기술된 감경요소 중 '형사처벌 전력 없음(32건)', '진지한 반성(15건)'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유출 범죄는 범행동기·피해규모 등이 일반 빈곤형 절도죄와 다르기 때문에 초범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첨단기술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는 개별기업의 피해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훼손을 가져오는 중범죄"라면서 "기술유출 시 적용되는 양형기준을 상향조정하고 감경요소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