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백악관 "美와 동맹·우방국 안보 위협 방지하기 위함이 목적"
中 즉각 반발 "집단 괴롭힘... 미국에 대해 엄정한 교섭 제기해"
정부 "美 행정명령 적용범위 미국인 또는 미법인에 한정... 영향 제한적"
◆…미중 반도체 대결[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9일(현지시간) 미국은 반도체·양자컴퓨팅·인공지능(AI) 등 3개 첨단기술 분야에 대해 미국 자본의 대(對)중국 직접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중국의 역외투자를 전면 통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셈이다. 이에 중국이 즉각 반발했다.
미국 자본을 상대로 한 투자 규제인 만큼 당장 한국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향후 미국이 동맹국에 동참을 요구하거나 중국의 대응이 강화될 경우 우리나라 반도체 투자 심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NH투자증권은 10일 '한국 주식 코멘트-미국의 중국 첨단산업 투자 규제, 국내 여파는?' 분석보고서를 통해 향후 미국이 동맹국에 중국 투자제한 동참을 요구할 지, 중국의 대응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나정한 연구원은 "미국의 중국 기업 투자 제한 조치 단독으로는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다만, 향후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에도 중국 투자 제한 조치를 요구할 경우, 중국향 첨단 반도체 투자가 제한되는 점에서 우려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미국의 투자제한 조치로 인해 중국정부의 추가 대응 조치가 나오는 등 첨단 분야에서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경우, 국내 반도체 업종 투자 심리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나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 업종은 AI 산업 성장으로 HBM 수요가 크게 확대되는 중이고, 하반기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등 긍정적인 요인도 존재한다"면서 "미·중간 첨단산업 경쟁 심화 여부에 따라 단기간 반도체 업종 주가는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론적으로 그는 "국내 주식 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미국 정부가 동맹국에 대중 투자 제한 참여를 요구할 지 여부와 중국 정부가 지난 갈륨 및 게르마늄 수출 규제와 비슷한 추가 수출 제한 조치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NH투자증권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의 사모펀드, 벤처캐피털 등 투자기업의 경우 반도체, 양자컴퓨터, AI 3개 분야에서 매출 비중이 50% 이상인 중국기업에 투자가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미국기업이 해당 분야에 속한 중국 기업에 투자할 경우 투자 계획을 사전 신고해야 하며, 미 재무장관이 투자 금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미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의 첨단기술 투자를 제한할 지는 45일간 의견수렴 기간을 거쳐 세부 시행 규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행정명령 발표 후 즉각 대변인을 통해 "중국은 미국이 고집스레 대중국 투자 제한 조치를 내놓은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고,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이미 미국에 대해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진정한 목적은 중국의 발전 권리를 박탈해 패권의 사익을 지키려는 것으로, 적나라한 경제적 강압이자 과학기술을 이용한 집단 괴롭힘"이라며 "미국은 시장경제와 공정경쟁 원칙을 엄중히 위반했고, 세계화에 역행하는 탈(脫)중국화를 도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 안내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을 방문해 현장에서 반도체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윤 대통령 오른쪽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KBS TV방송 캡처］
미 백악관은 행정명령 발효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려국(중국)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가 우려국의 군사·정보 역량을 강화해 미국과 동맹·우방국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임을 강조한 점이 그 배경이다.
우리 정부도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외교부 공동 명의로 배포한 자료에서 "미 행정명령의 적용 범위가 미국인 또는 미 법인으로 한정된다"며 "국내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 행정부가 그간 취해온 대(對)중국 관련 정책을 감안할 경우 추후 동맹국에 동참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우리 정부로서는 경제·안보 동맹 차원의 동참이냐 가까스로 회복 중인 대중 경제 상황을 다시 수렁으로 빠지게 할 것이냐는 갈림길에서 또 하나의 '뜨거운 감사'를 손에 쥐게 되는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래저래 넛 크래커(nut cracker) 신세를 벗어나기 힘든 형국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