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어떤 사람은 세금이라는 말만 끄집어내도 경기(驚氣) 하듯 거부반응을 보인다. '세무조사는 왜 힘들 때 나오느냐?'는 푸념성 항의에서부터, '내가 왜 세무조사 대상이냐?'는 불만 섞인 하소연을 듣는 경우도 더러 있다.
세무조사를 행하는 공무원과 조사대상자를 선정한 공무원은 엄격히 따진다면 다르다. 조사 공무원은 절차에 따라 명령을 받고 나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왜 선정되었는지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세무조사 착수 시에는 조사 착수 통지서를 제시해야 하고 조사 착수 통지서에는 조사대상 선정 사유를 기재해야 한다.
세무조사는 과세당국이 아무 때나 임의로(마음대로) 선정할 수는 없다. 조사대상자 선정은 법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현행 국세기본법상에는 '적정하고 공평한 과세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세무조사를 하되 과세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거나 '자의적인 조사권 남용은 엄격히 금지'한다. 또한, 한 번 했던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재조사를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국세기본법§81조의 4②).
세무조사 대상자는 조사받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그 경과 기간을 고려하여 정기적으로 선정하는 경우(국세기본법§81조의 6②)가 대부분이지만, 거래 내용이 사실과 다른 혐의가 있거나 탈루 혐의가 명백한 자료 등이 있을 때는 비정기적으로 선정(국세기본법§81조의 6③)하기도 한다. 또한, 상속세나 증여세처럼 부과과세 방식의 세목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조사 대상 사유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세액 등 결정을 위한 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국세기본법§81조의 6④).
최근 대법원 홈페이지에 중요 판결로 분류한 「증여세 세무조사의 적법 여부가 문제 된 사건」이라는 제목의 판례 속보(대법원 2024.3.12. 선고 2021두 32088 판결/이하 '대상판결')가 눈에 띄었다.
위 대상판결 사건은 과세당국이 A 법인에 대한 법인세 조사를 하면서 관계사인 B 회사와 B 회사의 주주인 C 주주들을 주식변동조사 대상자로 동시에 선정하여 세무조사를 실시한 후 B 회사의 사주가 주식을 명의신탁하였다는 이유로 C 주주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하자 소송을 제기한 사례이다.
대법원은 증여세 등 부과과세 방식의 세목의 경우에는 비정기 선정 사유(국세기본법§81조의 6③)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세액 등 결정을 위한 세무조사 대상 선정이 가능(국세기본법§81조의 6④) 하지만,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할 당시 객관적으로 보아 증여세 납세의무자에 해당한다고 추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증여세 부과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조사대상자 결정(선정)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려 왔지만, 대법원은 "세무조사 결정은 납세의무자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권력의 행사에 따른 행정작용으로서의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대법원 2011.3.10. 선고 2009두 23617 판결)."는 판결을 통해 행정 처분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세무조사 대상자의 선정은 세무조사를 위한 전단계이거나 세무조사의 최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정 과정에 위법이 있으면 그 후속 절차가 법적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관계없이 모두 위법하게 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강석규 변호사의 『조세법 쟁론』 중에서).
하지만, 필요적 전치주의가 적용되는 조세 행정처분의 특성상 이의신청이나 심판청구 등에 있어 재결청의 결심 없이는 원칙적으로 집행정지가 인정되지 않고 있어(국세기본법§57①)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대법원 판결은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무조사가 멈추지 않고 절차가 속행된다면 결국 세무조사 종결 이후에나 그 위법성을 다툴 수밖에 없다.
한편, 대상판결에 대해 "부과과세 방식의 세목의 경우 국세기본법 제81조의 6 제4항에 따라 세무조사대상 선정에 별다른 제한이 없으나, 세무조사 개시 당시 조사대상자가 상증세법 제84조와 같은 개별 세법상 질문‧조사권 행사의 상대방에는 해당하여야 하며, 질문‧조사권 행사의 상대방 여부의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객관적으로 보아 증여세 납세의무가 성립했다고 합리적으로 추정되는 자'는 소위 불확정 개념으로 향후 판례를 통해 그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돼야 할 것이다(법무법인 율촌 전영준 변호사의 판례 평석, 2024.5.3.)."는 데 공감을 더하게 된다.
대상판결로 인해, 향후 비정기 조사와 관련하여 세무조사 개시 당시 조사대상자 선정 근거가 구체적이고 명확하지 않다면 적법성 여부를 가리는 분쟁이 늘어날 소지가 있다.
조사대상자의 납세의무 성립 여부의 판단 기준시점은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할 당시'라고 할 것이며 대법원은 과세당국이 작성한 「조사대상자 선정 검토표」를 근거 중 하나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무조사 대상자를 선정할 당시'의 근거자료(「조사대상자 선정 검토표」 등)가 부실하거나 선정 사유와 분석 내용이 실질 내용과 상당 부분 괴리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과세당국의 조사 행정업무에 대한 신뢰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납세자의 권익 향상과 세정의 선진화를 위해 국세기본법에 '납세자의 권리'에 관한 규정이 도입(1996.12.30. 법률 제5189호) 된 지 어언 30여 년이 되어간다.
워런 버핏은 결과에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좋은 일은 작고 점진적인 변화가 쌓여 일어나므로 시간이 걸리지만, 나쁜 일은 갑작스러운 신뢰 상실이나 눈 깜짝할 새에 발생한 치명적 실수 탓에 일어난다(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 중에서). 대상판결이 주는 또 하나의 의미다.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현) (사)대한바둑협회 임원(이사), 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회 위원,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