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슐 전 의원 "또 다른 엉터리 결론인지 알 수 없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탄저균 테러'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탄저균 테러의 유력 용의자가 알-카에다와 같은 국제 테러단체가 아니라 미 육군 연구소에서 근무한 미생물학자라는 점에서 미국인들은 경악하고 있다.
AP 통신에 따르면 용의자 브루스 이빈스(62)는 35년간 메릴랜드주 포트 디트릭 소재 미 육군 생물학전 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미 연방수사국(FBI)이 자신을 기소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뒤 지난달 29일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빈스는 FBI가 수사망을 좁혀오자 심적 압박을 못이겨 자살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어떻게 밝혀냈나 = 7년간 미제로 남아있던 탄저균 테러의 범인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유전자 기술이었다고 AP 통신은 보도했다. 이빈스가 재직해온 연구소는 9.11 테러 직후 잇따른 탄저균 우편 테러와 관련해 FBI의 집중적인 수사를 받아왔다.
수사당국은 유전 정보를 담은 염색체 무리를 뜻하는 게놈(genome)의 신 분석 기술을 활용해 탄저균 테러 희생자들의 세포 샘플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이빈스 연구원이 소속된 연구소에서 문제의 탄저균이 유출됐음을 확인하고 감독 책임이 있는 그를 향해 수사망을 좁힐 수 있었다.
수상당국은 당초 이빈스의 동료인 스티븐 해트필 연구원을 용의선상에 올렸으나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1년 전부터 이빈스에 혐의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미 당국의 한 과학자는 "용의자 추적이 가능했던 것은 테러에 사용된 편지에서 채취한 DNA와 이빈스가 재직했던 연구소에 보관된 탄저균 DNA의 특성이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빈스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 이빈스는 친구들과 동료들로부터는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남성'으로 평가받아온 이중인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빈스는 교회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적십자사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등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은 아직도 그가 탄저균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빈스를 상대로 보호명령을 신청했던 이빈스의 치료사는 지난달 24일 법정에서 "이빈스가 실제로 여러 사람을 살해하려고 했다"고 증언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그녀는 "이빈스는 특히 여성들에게서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면 보복 살해 계획을 세우고 실제 실행에 옮기려 했다"면서 "그는 몇몇 정신과 의사들에게서 법의학적으로 반사회적 살인자라는 진단을 받았었다"고 주장했다.
◇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 미 수사당국은 탄저균 테러를 이빈스 단독 범행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
가장 큰 의문점 중 하나는 FBI가 왜 진작 이빈스를 수사하지 않았느냐는 것. 이빈스는 무단으로 탄저균 실험을 실시해 의혹을 샀으나 FBI는 동료 연구원인 해트필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고 AP 통신은 지적했다.
탄저균 테러 메일을 받았던 톰 대슐 전 상원의원은 AP 통신에 "이번 수사는 초기부터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 역시 또 다른 엉터리 결론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01년 9.11 테러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탄저균 테러는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다. 미 의회 건물과 언론사 등에 탄저균 우편물이 잇따라 도착했으며 5명이 숨지고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