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열풍땐 '악어-악어새'…증시침체로 균열
법적대응엔 펀드손실 비난 분산 의도도 있는 듯
KB자산운용의 펀드를 팔아온 증권사들이 19일 운용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펀드 판매사와 운용사의 밀월관계에 균열이 예상된다.
증권사와 운용사의 법적 분쟁을 통해 과거의 잘잘못이 고스란히 드러나면 `부적절한 동거관계'를 더는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의 불만은 KB자산운용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동산 펀드를 애초 제시했던 구조와 다르게 운용해 수익률이 목표치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KB자산운용이 시행사의 우발채무를 발견한 데다 투자자금이 채무변제에 사용된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를 증권사와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아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증권사들의 주장은 법정에서 진위가 가려지겠지만 액면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운용사들의 이 정도 잘못은 과거에 부지기수였는데도 문제되지 않다가 돌연 이 시점에서 불거진 것은 증시 장기 침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글로벌 증시 활황기에 운용사와 증권사는 밀월관계였다. 운용사가 신상품을 내놓기 무섭게 판매사에서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판매 규모에 비례해 각각 운용 보수와 판매 보수를 챙길 수 있었다.
운용사들이 주식투자를 위탁할 땐 증권사 입장에선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거액의 위탁매매 수수료를 얻는 행운을 안게 된다. 운용사가 악어라면 증권사는 악어새로 비유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가 가능했다.
펀드 운용 과정에서 웬만한 오류나 잘못이 발견되더라도 묵인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증권사가 운용사의 잘못을 지적했다가 자칫 눈밖에 벗어날 땐 막대한 수익원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 경험이 짧은 30대 중반의 펀드매니저들이 1인당 평균 2천800억원을 운용했음에도 경고음을 거의 울리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협회에 등록된 운용인력은 1천2명이고 평균 경력은 2.08년이다. 전체 펀드매니저의 60% 이상은 펀드 운용 경력이 1년 미만이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이나 카드채 사태 등과 같은 위기국면을 경험한 운용경력 10년 이상의 고참 인력은 4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기의 공포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젊은 펀드매니저들은 주식시장의 조정보다는 상승에 무게를 두고 주식에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이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제동장치 역할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더욱이 작년 중반부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재앙이 서서히 감지됐음에도 증권사들은 이를 애써 외면했다.
펀드 판매에 따른 수수료 수입이 당장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굳이 미래의 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펀드가 황금알을 낳은 거위 역할을 한 탓에 운용사와 판매사는 부적절한 동거가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글로벌 증시가 장기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전 국민이 가구당 1계좌를 개설할 정도로 펀드 열풍이 불 때 펀드에 가입했던 대다수 국민의 투자 원금이 1년도 안 돼 반토막났기 때문이다.
펀드에 대한 지식 없이 막연히 대박을 터트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묻지마' 투자를 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급기야 집단 소송에 돌입하면서 판매사들이 몰매를 맞아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판매사들이 펀드 가입을 부추기면서 손실 가능성이나 환매 수수료, 환헤지 위험성 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데 따른 업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판매사들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불완전판매보다는 운용사의 운용 책임이 더 크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증권사와 은행에 집중되는 투자자들의 비난과 불만을 운용사 쪽으로 분산하려는 계산도 이번 법적 대응 방침의 배경으로 작용한 듯하다.
판매사들은 투자자들이 운용사 측을 대상으로 소송을 할 경우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을 밝힌 대목에서도 이런 속내가 엿보인다.
운용사에 대한 증권사의 이번 선전포고는 어떤 경위에서 비롯됐는지 관계없이 펀드매니저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와 판매사들의 불완전판매 관행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국내 펀드시장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