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지난 수십년간 움켜쥐고 있던 '밥그릇'을 스스로 내려놓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바로 지난 9일 국세청이 주류 안전관리 업무 일체를 식약청에 넘기겠다고 발표한 것.
이에 따라 국세청은 앞으로 주류 세원과 면허 관리에만 집중할 방침입니다.
주류 안전관리 업무, 감히 '권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국민 건강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중대한 업무입니다. 이런 중요한 업무를 다른 부처에 떼어주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몰라도 자의에 의해 자신들의 업무를 내놓는 정부 부처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조금 나쁘게 표현하면 조직 이기주의가 여전한 대한민국 관가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업무적 측면에서 보면 비록 작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국세청이 조직 이기주의를 버리고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는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시중 여론도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국세청이 이 같은 결단을 내린 데에는 "징세기관이 주류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것에 대한 적정성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백용호 국세청장의 지시에 의해 본격적인 검토가 이뤄졌다는 후문입니다.
백 국세청장은 취임 이후 국세청이 '고유업무'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민건강과 연계되어 있는 주류 안전관리 업무는 국세청의 고유업무로는 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주류 업무를 국세청이 도맡아 왔다고 해도, 일종의 '기득권'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더라도 업무의 효율성이나 성격 등을 따져보면 국세청이 아닌 식약청 등이 수행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날 주류 안전관리 업무 이관 사실을 공표하며 국세청은 "행정기관이 자기 밥그릇을 내놓은 드문 사례"라고 자평하며 "신중히 생각했고 과감하게 이관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 국세청은 충분히 '자화자찬'을 할 자격을 갖춘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사실은 정작 가장 큰 박수를 보내야 할 국세청 내부에서 싸늘한 반응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인해 이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요.
"조직논리에 사로잡혀 무작정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살점을 아무렇지 않게 떼어주는 것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난 2월 주류 산업진흥 업무를 농식품부에 떼어준 바 있다"고 전제한 뒤 "우리 조직이 축소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 그간 해왔던 업무를 타 기관에 주는 것은 문제"라고 일갈했습니다.
업무의 이관으로 국세청 기술연구소 직원 수 명을 줄여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에 대한 반응도 냉담합니다. "기술연구소 직원을 줄인다는 것인데 아무리 적은 수라도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로 볼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 번 물꼬가 트인 이상 결국 주류 면허관리 업무 등도 내어주고, 국세청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주류산하기관 인사도 다 빼앗겨 버리는 것 아니냐는 다소 섣부른 우려를 제기하는 모습도 엿보입니다.
이 같은 지적의 목소리를 "조직 이기주의에 치우친 구태적 논리"라고 몰아세우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들 또한 국세청 조직을 위한 '고언(苦言)'이기 때문입니다.
국세청이 국민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업무를 식약청으로 이관해 한 차원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득이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의 뜻을 보내는 모양새입니다.
다만 식약청 이관의 효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을 경우, 언제든지 이와 관련한 조직 내부의 갈등은 고개를 들 여지가 충분해 보입니다. 이미 살점을 다 떼어준 상태라면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 대가를 치를 마음의 준비(?)도 일견 필요해 보입니다.
